FUJIFABRIC 10th Anniversary @ 일본 무도관
아주아주...깁니다. 엄청 깁니다...
2014.11.28
정확히 10년전 오사카 신사이바시에서의 메이저 데뷔 후 첫 원맨 라이브가 있었다.
그리고 도쿄 치요다구 니혼 부도칸에서 라이브를 갖게 된다.
리버스의 긴 버전이 후지패브릭 10년 로고 이미지와 함께 나오며 대기하다가 불이 꺼지고, 검은 풀밭을 달리는 여자아이의 실루엣 속에 지금까지 발매된 공연들이 지나갔다. 시무라의 얼굴이 처음 등장하는데 장내에는 헉하는 소리와 환성소리가. 리버스와 10년이라.. 이루 말하기 어려운 착잡한 기분으로 허리에 손을 얹고 영상을 바라봄.
그래도 그때까진 아무래도 난 남자들만 드글거리는데 아이콘이 청춘 여자애인 밴드를 좋아하게 되는 별자리 아래서 태어났나보다 하는 시시껄렁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는데...
어두운 무대에 멤버들이 나오는 걸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다, 야마우치의 손에 익숙한 모자의 실루엣이 보여, 그걸 자기 앰프 위에 올려놓는 듯한 실루엣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관크 죄송.. ㅠㅠ 왠만하면 안 그러는데 진짜 너무 놀라서..) 잠깐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르고 다시 보니 모자를 옮긴건지 내가 잘못 봤던 건지 놓았던 자리에 모자가 없었다. 야 내가 참 헛것을 본건가 좀 부끄러워지려는 찰나에... 벚꽃의 계절.
객석을 환히 비추는, 솔직하고 적나라한 조명 속에 무대 뒤편 스크린에는 온 힘을 다해 오래하는 야마우치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비춰졌다. 이미 내 옆에 언니들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쏟아지는 감정을 억누르고 계심. 야마우치의 얼굴이 어땠는지, 멤버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제대로 된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10년을 반추하는 첫곡으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데뷔곡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일렁일듯한 감정에, 조금전까지의 영상에 있던 시무라의 바톤을 이어가는 멤버들의 특별한 감정은 아무리 건조한 문장으로 쓰려 해도 뜨거워서 손을 못 댈 것이다. (어차피 난 건조하게 쓰려는 노력도 안 하고 있음)
라이브는 흠 잡을 곳이 없고, 오직 목소리만이 바뀌었다. 시무라만이 없다. 집중이 안 된다.
카게로우가 바로 이어진다. 객석을 밝히던 노란 조명이 꺼지고 조금더 무대를 감싸안는 푸른 톤의 조명. 사계반을 한번에 끝내버릴 생각일까, 연대기순으로 가려는 걸까 싶을 때 샤리가 바로 이어진다. 앨범 라이프 곡순이랑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난 라이프를 들을 때처럼 웃을 수가 없고, 어떤 표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는걸. 그렇게 듣고 싶었던 샤리인데 카게로우에 바로 붙여도 밀리지 않는데 한번 떠난 집중력이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든다.
지금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카게로우의 바톤을 잇는 곡으로 샤리만한 것도 없다. 사계반을 그대로 이어버리면 얼마나 심심하고 진부한 10주년 라이브가 될까. 그리고 신생 후지의 다른 곡이 아니라 샤리라는 점이, 그 대놓고 이상하고 매력적인 곡이라는 점이 기쁘다. 쉬지않고 이어진 슈가 뒤, 언제나와 같은 야마우치의 곰방와- 후지화브리끄데스- 로 엠씨가 시작됐다.
10주년에 꿈같은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다며 벅찬 마음을 전했다. 단어 단어를 눌러 말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조금씩 사이가 떨어져 있다. 감정을 삼키며 말하는 모양. 그렇지? 그렇지? 카토씨와 카나자와 선생에게 동의를 구하며 일부러 가벼운 톤으로 농을 걸어오는 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다이짱도, 카토상도 한마디씩 소감을. 그리고는 흰 스트라토를 들어보이며 이거 시무라 기타인데요~ 하고 운을 띄운다. 시무라 앰프 matchless 도 같이 올라와 있다며, 오챠에 같이 기타를 사러 갔던 일이나 (스트라토 사려는데, 어때? / 괜찮겠져.) 앰프 위에 야마우치가 올라탔다 넘어져 앰프에서 연기가 났던 얘기를 했다. 연기가 나서 시무라가 계속 뭐라 했다는 그 얘기. 객석과 무대에서 작은 웃음소리. 실은 자기들은 레코딩중이라던가, 일상적으로 시무라의 얘기를 한다면서. 한번은 다이짱네 컴퓨터 음악 장비 관련으로 얘기하러 온 시무라가 음악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하루종일 자취생의 펫 一人暮らしのペット이라는 책만 읽다 갔다던가.
그래서, 오늘은 시무라도 함께 부도칸에 한다는 기분으로 장비를 무대에 세웠다고. 10주년,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마치 꿈만 같다고. 얘기하는 동안 아리가또를 열번은 말한 것 같다. 한문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츠레즈레 모노크롬. 이 시기의 곡들은 정말로 앨범보다 라이브가 세배는 좋다. 생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이 록사운드 그 자체. 멤버들의 실력이 아직도 늘고 있는 것일테고 보보씨와 나고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때는 뒤의 스크린을 끄고 조명이 번쩍였다. 슈가 때부터 그랬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모노크롬 부턴 확실히 스크린이 없었다.
그리고 와이어드. 화끈하게 달려보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내가 집중력을 잃지만 않았었으면 이미 여기서 체력이 반은 고갈되지 않았을까 싶은 흐름이다. 무대 뒤 스크린에선 특별제작된 (나중에 알고 보니 이번 라이브의 모든 영상은 스미스감독 작품) 총천연색의 소용돌이가. 킷또 와이야도-라고 하는 후렴에서는 멤버들의 얼굴만 따다가 점묘화처럼 만들어 각 동그라미들이 모여 얼굴이 되었다가 퍼지는 식으로 한 사람씩 지나갔다. 야마우치 헤어스타일 때문인가 네번째 나오는 얼굴을 보고 시무라?! 하고 놀랐는데 그냥 다시 첫번째 우치로 넘어간 거였다. 나도 참 어지간히 시무라를 찾고 있다고 자조. 곡 절정에서는 그 얼굴들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각각 한가지씩 지었다. 역시 재밌는 밴드야. 이런 촌스러움과 괴상함이 스미스씨랑 잘 맞는다.
조명이 더 어두워지고 초록색 레이저가 무대 위편에서 발사됐다. 시부야공회당에서 했던 지평선을 넘어서 무대연출의 오마주. 하나, 둘, 차례차례 부도칸의 팔각 모서리마다 레이저가 뿜어지며 공간에 입체감을 만든다. 라이브는 사실 왠만큼 가까운 데 서 있지 않으면 시각적인 현장감보다는 청각적인 현장감 때문에 고무되게 되어있는데 레이저가 온 공간을 누비면서 공간감을 인식시켜주니 이 앞에 후지패브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 곡의 이미지는 더블넥기타지만, 이번에는 따로 더블넥을 쓰진 않고 그냥 기타만 바꿔들어 나고상과 합을 맞췄다.
지평선이 끝나자마자 어마어마한 음량의 드럼이 귀를 때린다. 꽈광! 꽈광! 벼락같이 꽂히는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efil 라이브 버전. 약간 템포를 늦추고 좀더 철그렁거리는 사운드를 섞어 보다 하드록답게 연주했다. 이 노래는 중간 주제부가 너무 많아서 씨디로 들으면 긴데, 사실 라이브에서도 좀 길긴 하다... 그러나 라이브를 위한 곡임엔 틀림없다. 카나자와에게 달려갔다가 카토상에게 달려갔다 바쁜 야마우치. 녹색 적색 조명이 스미듯이 뒤에서부터 번지는 장면들이 있었다. 오로지 녹색과 검은 그림자들로 멤버들이 보이는 순간 이 광경을 평생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카만 우주에 그들만 떠있는,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같았다.
이 뒤에 엠씨가 있었던 거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엠씨를 안 했다기엔 그럼 다음 두곡까지 포함해 6곡을 내리 한건데; 벌써 이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타를 흰색 스트랫으로 바꿔들고 적황색 금목서가 시작되었다. 지평선에 이어, 과거 무대 연출의 두번째 오마주. 패브박스1의 초기 라이브클립 중에서 본 것 같다. 정사각형의 조명 패널이 무대 뒷면에서 산발적으로 번쩍인다. 사계반중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노래다. 키보드 카나자와 다이스케! 야마우치와 시무라가 겹쳐보이는 순간이다.
카나자와로 끝나는 금목서에 이어 다시 카나자와가 시작하는 블루가 울려퍼진다. 스크린에는 푸른 LED가 물결을 이루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꿈결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야마우치의 보컬실력이 또 한번 성장한 데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우치는 이번 라이브로 전하고 싶었던 걸 전부 전할 수 있었지 않을까. 마냥 착하지만은 않은 발라드 말미에는 노이즈가 잔뜩 걸린 사운드가 터져나간다. 아름다운 곡이다.
라이프라는 앨범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이 왜 후지패브릭을 계속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거듭해왔다고 했다. 시무라가 고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만든 밴드에 자신들이 남아 계속하는 이유. 그건 역시 자기들이 후지패브릭의, 시무라군의 팬이기 때문에,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시무라군이 만든 후지패브릭이라는 밴드와 노래들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후지패브릭을 응원해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빨리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라이프 투어와 부도칸 라이브는 일종의 고백적 성격을 띈다고.
오늘은 시무라와 함께 연주하고 싶다. 는 야마우치의 말과 함께 카토씨가 마이크 스탠드를 무대 중앙으로 가져왔고, 야마우치는 그 위에 시무라의 모자를 씌웠다. 잘못 본게 아니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시무라의 matchless 앰프 위에 내내 올려놨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카나자와의 키보드로 곡이 시작된다. 아카네이로노유우히. 시무라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기타&보컬이 아닌, 기타리스트 야마우치를 라이브에서 처음 본다. 시무라의, 후지패브릭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노래를 멤버 네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 시무라의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담담하게 들렸다. CD에서 추출한 목소리일텐데,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라이브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온다.
이 노래를 이렇게 연출해준 모두에게 고맙다. 여태까지 라이브에서 연주하지 못한 이유였을, 곡이 갖는 상징성때문에 이번에도 안 하고 넘어갔다면 상당히 아쉬웠을 것이다. 크게 아쉬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기대를 내려놓고 있던 곡이었는데 이런 연출로 볼 수 있어 행운이다. 하나의 라이브에는 보통 하나의 기승전결이 있다. 하지만 후지패브릭의 10주년 라이브에서는 공연 전체에 해당하는 기승전결 외에도 시무라를 추억하고, 남아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로하는 기승전결이 하나 더 있었다. 시무라가 부르는 아카네이로노유우히를 받아 야마우치가 부르는 와카모노노스베떼가 연달아 부도칸을 가득 메운 순간은 후자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리고는, 바로 졸업과 카타치. 여러번 곱씹어볼수록 오로지 직구만 던져대는 셋리스트다. 눙치는 것도 없고, 부끄러워하는 눈치도, 망설이는 기색도 없다. 앨범과 투어와 부도칸 라이브를 준비하며 확실하게 낸 답에 불안은 보이지 않는다. 후지패브릭이 좋으니까, 시무라가 좋으니까,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고마우니까. 후지패브릭은 무대에서 시무라를 추억하고 지금의 노래를 부른다. 시무라의 흔적이 묻어있는 경우도, 묻어있지 않은 경우도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의 지금 색깔을 드러내는 솔직함이 좋다.
졸업은 멤버들을 스크린에 비췄고, 카타치는 자연 경관이 부드럽게 펼쳐지는 영상과 함께 했다. 졸업에서 비추는 멤버들의 모습은 처음엔 세피아 톤으로 시작했다가 후렴인가 2절인가에 이르러 천연색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이렇게 눈물나게 직선적이고 요령없는 연출이라니... 스미스씨는 후지패브릭을 꿰뚫고 있다.
아마 이때 다시 엠씨를 했던 것 같다.
첫 엠씨부터 느낀건데 야마우치 상당히 말이 짧아졌다. 거의 70퍼센트는 반말로. 어라 우리 그런 사이였나요..? ㅋㅋ 그리고 꽤 심한 오사카벤을 썼다. 단어는 어차피 못 알아듣는 건 스루하니까 얼마나 어려운 어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억양이 표준어랑은 완전히 달랐다. 감정이 벅차서 그런 것도 있을 듯.
정신 차려보니 다이짱은 모자랑 마이를 벗고 베스트 차림이 되어 있었다. 소우군이 다이짱 손에 걸려있는 모구라이트를 언급했다. 다이짱도 모구라이트가 맘에 들어서 공연할 때 차고 있다고. 라이트가 계속 켜져있는 모드와 소리에 반응해서 깜빡이는 모드를 설명하다 실험이 하고 싶어진 다이짱. 아레나, 1층, 2층이 차례차례 함성을 질렀을 때 어떻게 색이 번져가는지를 시험했다. 모두 조용히, 조용히~ 하나, 둘 함성! 하면 지정된 블록에서 함성을 질렀다. 블록을 바꿔가며 네다섯번쯤 했는데, 한번 할 때마다 다이짱이 브라보~!를 외쳤다. 그리고 카토상에게 몇년만의 카토크 요청! 처음에는 카토크의 뜻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다가 우치가 집요하게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당황한 카토씨. 부도칸을 주제로 받고,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뒤돌았는데... 불과 1분도 안 돼서 다 됐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부도칸이라고 걸고, 새벽의 바다라고 푼다. 그 뜻은, 양 쪽 모두 カイジョウ (会場/海上)가 근사하니까."
장내에는 환성과 감탄의 박수가 울렸다. 뿌듯하고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마음들.
엠씨 내내 야마우치는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자꾸 고맙다는 말만 하는 것 같지만, 이라고 쑥스럽게 말하면서도 계속 고맙다고 했다.
보보씨의 1,2,3를 신호로 새벽의BEAT가 시작됐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공연이 클라이맥스로 고조되는 시점이다. 야마우치 회심의 머리 뒤로 기타돌려치기도 여기였던 듯. 바타아시 party night 와 MAGIC이 뒤를 이었다. 바타아시의 중반쯤, 갑자기 야마우치가 기타를 내려놓길래 헐 설마 춤추려고?;; 우리 서로에게 힘들 일은 하지 말아요...라고 걱정하는 것도 순간,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분리하더니 무대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종횡무진하며 *소과장님의 노래방 필드* 전개! SMA에서 했던 서퍼킹의 그것을 확장판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아 간지럽다....ㅋㅋㅋㅋㅋ
매직에서는 후렴의 오-오-오-오-오-를 평소의 두배쯤 많이 했다. 조금 힘들었지만 저렇게 감격에 겨운 멤버들의 표정을 보면 열배라도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니터 너머로만 보던 오오오를 하다니...까지 쓰고보니 팹스텝 투어 때 했었구나 ㅋㅋ 그래도 부도칸에서 하는 떼창은 역시 특별했다.
그리고 다시 무대를 스크린으로 비추며 호시후루와 함께 울려퍼진 함성. 전주가 끝나고 야마우치가 입을 떼는 순간, 일시에 모든 음량의 볼륨이 확 낮아졌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10주년 부도칸에서 음향사고라니. 게다가 그 일본에서?;;; 내 등에 식은땀이 다 흐르는 듯. 스크린이 야마우치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위를 쳐다보느라 보이는 야마우치 눈동자의 흰자위 + 표정없는 얼굴에서 초기 때의 싸한 비주얼을 발견하고 더욱 긴장했다고 합니다.... 담당자 다이죠부..?
이후 탐라에 리트윗되어오는 일본 반응 중에 재미있고 뭉클한 발상이 있었다. 시무라의 장난(또는 어필)일 거라는 것. 기본적으로 산 사람의 불가사의한 에네르기는 믿어도 세상을 떠난 사람에 있어선 우리가 그들을 추모하고 심정적으로 기대는 일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떠올리기 힘든 발상이지만, 정말 그렇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같이 있어주었기를. (한편으론 민간신앙이 발달한 일본다운 발상이라는 생각도.)
음향사고가 부도칸의 열기를 꺼트릴 순 없었다. 약속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대목들에서 힘껏 손을 뻗어 모구라이트를 반짝이는 모습이 말 그대로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그리고 라이프. 라이브버전으로 어레인지된 약간 실험적인 전주에 이어 수백번 들어 익숙한 따단 따따단 하는 멜로디가 연주됐다. 마지막곡이라고 말한 적 없지만 모두가 이 곡이 이 라이브의 하이라이트임을 알고 있었다. 지나온 10년과 앞으로의 10년, 그 이상을 잇는 곡. 개인적으로는 탈덕을 막아준 의미있는 곡이기도. 행복과 아쉬움이 점점 커진다. 벌써 마지막곡이라니, 왜 꿈결같은 시간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는걸까...
야마우치의 인사와 함께 일단 멤버들이 무대 뒤로 들어간다. 일본 라이브 특유의 절도있는 박수가 이어진다. 한국의 앵콜 콜처럼 당장 나오지 않으면 다 부숴버리겠다는 열혈은 아니지만, 니들이 나올때까지 언제까지고 여기서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콜이다. 야마우치가 꽤 빨리 모습을 보였다. 다른 멤버들은 없이 혼자서만. 다시 몇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뒤, 자신이 노래를 하는 이유에 대한 곡이라며 히키가타리로 sing을 연주했다. ✳︎がいない夜に歌う… 목소리와 기타 한대만이 부도칸을 꽉 채우고 소리에 반응하여 모구라이트가 점멸한다. 이 음역대, 또는 이 데시벨로는 흰색 모구라이트가 가장 먼저 반응하는지 장내가 하얀 빛으로 넘실댔다. 야마우치는 당신을 생각하며, 라는 부분을 당신이 있으니까로 바꿔 불렀다. 섬세하게 흔들리는 (의도하지 않은 비브라토 ㅎㅎ) 목소리와 그에 담긴 각오가 고맙다. 후지패브릭을 좋아하니까 계속하고, 후지패브릭의 음악을 기다리며 라이브에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을 얻어 노래를 한다. 단순하지만 믿음직스러운 이유다. 팬들에게 몇번이나 고맙다고 하지만, 우리야말로 너무너무 고마운데.
야마우치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들었어? 너희가 있기 때문이라구! 알겠지?' 라며 팬쪽을 향해 삿대질을... 소녀심에 물들어 질식사할 것 같은 나에게 확인사살을.... 삿대질은 내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다.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삿대질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ㅋㅋㅋ
역시 혼자는 외롭다면서 어서 나오라고 멤버들을 재촉한다. 다섯 사람 모두 굿즈상품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 정장 그대로다. 굿즈 꽁트는 생략하기로 했거나, 투앵콜이거나..? 내심 기대를 갖는다.
GUM이 차분하게 시작되었다. 앵콜로 할 거란 생각은 했는데, 그건 좀더 교묘하고 은근한 분위기 속에서 할 거라 예상한 거지 이렇게 드러내놓고 시무라와 함께 하는 라이브에서 앵콜로 나올 줄은 몰랐다. 상처를 곪지 않고 흉터가 잘 자리잡히도록 하는 중에 앵콜로 연주되는 GUM은 놀랍도록 뭉클하고 특별했다. 후지패브릭이 원래 이렇게 솔직한 밴드였구나. 나는 또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MC.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라이브는 후지패브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라이브가 될거라고 줄곧 말해왔는데, 그래서 신곡을 썼다고. 러브송을 썼다고. 너희들을 향한 러브송이라고...아악 그만ㅋㅋㅋㅋㅋㅋ 다른 라이브들에서의 엠씨 네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신곡이 러브송이라는 것에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신곡 발표라니 그저 너무 기뻤다. 역시 록이라면 러브송이지, 라고 했던 시무라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신곡 '시작의 노래 始まりの歌'를 선보이는 동안 스크린에는 가사가 떴다. 전주가 나오는 순간 이거 또 홀리겠구나 했다. 약간은 스피츠를 떠올리게 하는 리프에 청량한 보컬, 카토씨의 손길이 닿은 게 틀림없을 듯한 언어유희적 가사. 사랑에 빠지는 소년/청년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시원한 느낌의 곡이었다. 나중에 아이튠즈 크레딧 (드디어 JCB카드를 뚫은 보람이...) 에서 확인하니 작곡은 야마우치&카나자와. 가사는 모르겠다. 전체적으로는 카토상 느낌이 물씬 들었다. 그런데 야마우치가 하도 러브송러브송 하고 다녔으니 메인일 듯도 하고... 카토씨한테 쿠세가 옮은걸까? ㅎㅎ (* 공식에서 작곡 야마우치/카나자와, 작사 야마우치라고 밝혔다.) 하이라이트에서 조명이 확 밝아지며 금색 폭죽이 팡 터졌다.
이어서 사계반의 마지막 작품 은하.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마리노 우타의 기세를 몰아 가슴이 벅차오르는 떼창을. 거의 쉬지 않고 뛴 것 같다. 지정좌석제 최고야..낑기지 않으니 체력이 안 닳는데다 계획적으로 아낄 수도 있어..ㅠㅠ 그리고 마지막을 알리는 STAR. 앨범에서는 첫 곡이었지만 라이브에서는 엔딩에 이 이상 잘 어울리는 곡도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강력한 추진력, 위로 올라가는 고양감. 넓게 퍼지는 사운드에 결연하고 적극적인前向きな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하다. 시무라가 만든 곡과 나머지 멤버들 (특히 야마우치)이 만드는 곡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이 '솔직함'에 있을 것이다. 시무라는 늘 자기 감정에 솔직한 곡을 썼지만 그게 전부 리스너에게 솔직한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감정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라이프라는 앨범은 더더욱. 사실 이걸 STAR를 들으면서 생각한 건 아니고... 당시에는 이 라이브가 곧 끝난다는 생각과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스크린에서 마구 번쩍이는 하얀 빛에, 'FUJIFABRIC'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 순간을 함께 하게 해줘서 고마웠다.
마지막의 마지막, 멤버들은 연신 허리를 굽히고 손을 들어 왼쪽, 오른쪽, 정면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야마우치가 시무라의 모자를 들었다. 다함께 손을 잡고 인사할 때, 야마우치의 오른쪽, 보보상의 왼쪽, 즉 정 중앙에 시무라의 모자가 높게 들어올려졌다. 함께 있었다.
라이브 전, 멤버들이 시무라가 세상을 떠난 뒤 후지를 안 듣게 된 분들도 왔으면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었고 또 팬들도 그걸 받아 영업/홍보를 했었다. 라이브를 보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물론 와주었다면 펑펑 울고 마음 아파하고 같이 시무라를 추억하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겠지만, 이 라이브에서 가장 큰 감동을 얻은 이들은 시무라와 함께 하던 팬이든, 아니면 이후에 새로 유입된 팬이든, 신생 후지패브릭을 계속 지켜봐 온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현재의 후지패브릭이 어떻게 과거와 이어지는지를 마음 졸이며 지켜본 사람들에 대한 대답. 다같이 고민해왔던 질문에 대한 후지패브릭의 대답. 부도칸 라이브로 들려준 대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고, 해야 되기 때문도 아니다. 하고싶기 때문에. 좋아하니까. 사랑이 모든 문제의 실마리라느니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사랑을 전제로 한다면 얼마나 충실해질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고, 그건 앞으로의 후지패브릭을 지켜보면서 알아가고 싶다.
실은 지난 7월에 있었던 시무라전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어느 일본인의 트윗을 보고 상처입은 적이 있다. 대충 '후지패브릭은 언제까지 시무라시무라 타령할거냐'라는 말이었다. 다시 생각하니 또 혈압이... 화가 나서 트윗을 털어보니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쿨한 줄 아는 넷우익이었다. 별로 상종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찝찝하게 남아있었다. 아픈 데를 건드렸기 때문일거다. 그런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후지패브릭이, 팬들이 시무라를 이야기할 수 없다면 대체 누가 그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몇번이나 있었던 고비를 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함께 가야지. 이젠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후지패브릭이 너무 좋다.
* 어느 부분의 엠씨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장면들
[1]
카토상 '정말로 많은 목이 있네요. 잠깐 다들 천장을 봐줄래요?'
(다들 의문스럽게 고개를 쭉 빼서 위를 올려봄)
카토상 '아, 이제 됐어요. 그냥 목을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많은 목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라이브 초반 엠씨)
이상햌ㅋㅋㅋㅋㅋㅋ
[2]
후지패브릭은 가을이 되어 금목서 향기가 나면 저절로 떠오르는 노래를 만드는 그런 밴드. 어떤 홋카이도의 팬은 홋카이도에는 금목서가 피지 않기 때문에 그 향기를 모르지만, 이 곡을 들으면 왠지 알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곡을 만들 수 있어서 기쁘다. "手紙でももらうんですよ。北海道の方から。北海道は金木犀が咲かないんです、と。でも曲を聴くとなんとなくその匂いがわかるって聞いて、音楽の力って素敵だなって。そういう曲があって、ほんとに良かったなと" (금목서 연주 하고 난 후의 엠씨 중 하나였음)
생각나는대로 추가할게요~
기억이 정확하지 못해서 MC 순서가 좀 틀렸을 수 있다.
http://ro69.jp/live/detail/114380?rtw MC를 자세히 써둔 록인재팬의 레포
http://www.cddata-mag.com/article/live/2014/12/08/15/06/39 개인적으로 좋았던 CDDATA 레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