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일기

저수지의 개들/헤이트풀8

서울소녀회 2016. 4. 4. 21:22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상암 영자원으로.

가는 길에 홍대 크로우에 들러 드디어 피어스를 바꿨다. 버킷리스트를 하나 달성해냈다. 미용실과 병원에 가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다. 당장 스케일링 하러 가야지.. 아, 예쁜 피어스들이 잔뜩 진열되어있었지만 알러지가 심하다고 하자 손바닥만한 작은 상자에 정리된 제품들을 소개받았다. 그런 운명.. 아니면 십사케이 금을 해야한다고..

지난주에 잘못 샀던 코팩;은 무사히 습윤패치로 교환했다. 감사합니다 흑흑
자초지종 설명하려고 진열돼있던 습윤패치를 들고 내 가방에 있던 코팩을 꺼내서 보여주는데, 습윤패치랍시고 가지고 온게 이번엔 화이트코팩이었다.......... 막상 습윤패치는 영판 다른 곳에 진열돼있었다. 직원님 제가 이렇게 딱하네요...


!이하 스포일러!

저수지의 개들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씨탓이었는지, 전석매진이었지만 안 온 사람들이 많아 대기자가 70명정도 들어올 수 있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대기한 보람이 있었을 듯.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연출이 곳곳에 있었다. 92년에 나온 영화인데 메타의 선봉장이었나 봄. 특히 오렌지가 거짓 무용담을 익히고 늘어놓는 장면이 최고였다. 거짓무용담을 익혀나가는 과정에서의 차근차근한 장면 전환이 귀엽게 느껴졌는데, 지금이라면 아마 더 파격적으로 편집이 들어갔을 것 같다. 이 시퀀스의 핵심인 마약견과 경찰관을 놓고 떠벌떠벌하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이기도. 거짓(언더커버)와 진짜(실제 도둑질과 살인)이 엉망진창으로 엉켜버리는 과정.

피범벅이 된 미장센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비현실감이 느껴졌다. 회화를 보는 기분. 그리고 타란티노 되게..변태구나? ( ͡° ͜ʖ ͡°) 오렌지한테 피 뒤집어씌워준거 고마워.. 처음에는 팀로스한테 별 생각 없었는데 주인공 보정인건지 집요한 카메라시선에 감명받은 건지 점점 잘 생겨지더라. 아 그리구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 트루러브라서 당황했다. 그 전까진 브로맨스였지 마지막엔 저러다 뽀뽀할까봐 가슴을 졸이고야 만 것...

플롯도 재미있었다. 쳐낼건 과감하게 쳐내서 약 90분간의 러닝타임 안에 산뜻하게 담아냄. 저예산의 압박이 눈에 보이면서도 이야기가 정말 스무스하게 풀려서 감탄했다. 다만 핑크가 어떻게 합류하건지 궁금했는데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아니었어서 아쉬웠다. 진짜 하찮고 매력적인 캐릭터였음. ㅋㅋ

여담으로 내 옆에 자기집 안방처럼 화통하게 웃는 사람이 앉았는데 내 뒤통수 뒤에서 웃는 것보단 옆에 앉아 웃는게 낫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언제 웃을지 대략 추측이 가능하더라고 하하하... 영화 끝나고 앞줄 사람 서넛이 그 사람 얼굴을 확인하더라.


버거킹에서 쿼터치즈였나? 치즈 네개가 들어간 와퍼를 순삭하고 다시 들어갔다.


헤이트풀8

등장인물이 모두 모이는 도입부가 좀 길어서 그렇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특히 뒤로 갈수록 사건이 촘촘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노인 캐릭터 하나, 여자 캐릭터 하나가 나왔을 뿐이지 '혐'의 주요 초점은 인종차별에 맞춰져있음. 여자가 여자이기 이전에 갱으로 묘사되며, 도머그의 여성성은 '여자를 죽이는게 찜찜하지 않냐' 정도의, 여자는 으레 보호해야한다는 마초이즘이 드러나는 대사 선에 머물러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도머그는 여자라기보다는 살인마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 짧은 지식으로는 타란티노가 젠더감수성도 상당히 예민하다고 알고 있는데 오옹..? 하는 생각은 들었다. 헤이트풀8에서는 인종차별 빼고 다 쳐낸건가. 근데 그렇다면 도머그가 굳이 여자일 필요가 있나? 필요가 없으니 여자는 1도 안 나왔던 저수지의 개들을 생각해보면 의도가 있을텐데. 게다가 마지막에 이따만한 화면 전체에 교수형당하는 피범벅된 도머그의 바스트샷을 5초정도 걸어놓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제일 나쁜 사람을 좀 덜 나쁜 애들이 매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매달리는 사람이 '여자'이고 매다는 사람들이 '남자'인 데다, 또 매달리는 여자를 위해 그 여자의 편인 남자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아.. 과부하걸린다
젠더적 이슈 빼고도, 지난주부터 본 타란티노 영화 네편중에 제일 물음표가 많이 떠올랐던 영화이기도.

인종차별을 일삼는 악당을 물리쳐라! 라기엔 너도나도 싹다 악당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 죽어버릴 줄은 알았다. (데이지네가 좀더 악당이긴 함) 피아식별이 불가능하며 선악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시종일관 희화화되고 물성화되어서 결국은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지는 고깃덩이가 된다. 그나마 죽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 도머그 정도. 그 고깃덩이들을 뒤로 하고 마지막에 제일 높은 곳에 걸리는 그녀가 상징하는게 대체 뭐지.. 다시 과부하. 갖고 있는게 많은 캐릭터다.

연극에 영화를 다 때려부은 실험은 멋지게 성공한 것 같다. 극 초반에는 소설을 영상화했다는 느낌도 들었음. 그러면서도 스타일은 서부극으로 일관성있고. 어떤 스타일을 에이부터 제트까지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화면비는.. 이 화면비로 하고 싶었던 것도 다 해본듯. 그 화면비 때문에 연극적 연출이 더 효과적으로 가능했다. 중심에 인물이 있더라도, 어딘가에서 (심지어는 화면 바깥에 있는) 다른 인물의 존재감이 계속 느껴진다.
그리고 프레임으로 신체의 일부가 가려지지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나오는 숏이 많은데다, 부감이나 조감을 많이 쓰지 않으니 정말 연극의 관객이 되어서 관찰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면비를 새삼 실감한 건 침대에 누워있는 사무엘 잭슨이 머리부터 다리까지 한 화면에 다 담겼던 순간.
또, 이 널따란 화면 안에서도 포커스를 옮기거나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좁히는 등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명확하게 느끼게 해줬다. 하긴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어버버할거였으면 시도도 안 했겠지. 부럽다 천재여

저수지의 개들을 보고 헤이트풀8을 바로 보니 순식간에 세월에 이십년 뛰면서 나이먹은 배우들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타란티노가 배우들에게 투영하는 캐릭터성이 미묘하게 겹치는 게 보여서 재미있었음.
아참, 마이클 매드슨 좀 피터 세라피노윅 닮은 거 같다. 저런 눈매에 저런 골격은 저런 목소리를 갖게 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