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 in the air/Fujifabric

후지패브릭 신보 LIFE 감상

서울소녀회 2014. 9. 7. 11:49

3인 체제로 바뀐 뒤 가장 맘에 드는 앨범이다.
싱글 라이프가 나왔을 때 마르고 닳도록 돌려들을 때 이런 경험이 오랜만에 겪는 일이라 상당히 떨렸었는데, 그래도 그때 한번 그 떨림을 겪어서 그런지 지금 앨범도 마르고 닳도록 돌려들을 느낌이어도 그렇게까지 떨리지는 않는다. 싱글 땐 진짜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좋아져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이번엔 '음 좋군. 당연히 좋겠지' 싶다

확실하진 않지만 크로니클-후지패브릭-틴에이져-팹폭스-뮤직-스타-이후 발매순으로 음반을 제대로 들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틴에이져-후지패브릭-크로니클인가... 아 기억이 안난다 ㅠㅠ 처음 들었던 노래는 와카모노노스베떼고 이 밴드가 이런 노래를 만들었나?! 하고 놀란 게 슈가였던 건 확실하다.
암튼 모든 앨범을 주행했던 게 시무라 사후이다보니, 어쨌든 퀄리티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로 시작했던 초기작들과 달리 뮤직부터는 걱정과 불안을 깔고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개인적인 앨범 선호도에 영향을 미쳤기도 하고.
평작 이상이지만 명작이라기엔 스알짝 부족한 앨범들을 거듭하면서 기다린다는 느낌으로, 응원한다는 기분으로 같이 해왔다. 으리라고 해야하나...후지패브가 나의 으리따위 필요로 할까 싶지만..

리버스에 조금 놀라 귀를 쫑긋 세우다
껌이 시작했을 때는 상당히 감상적인 기분이 됐다. 이 곡을 듣기 위해 5년을 함께 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디 자체는 야마우치가 여태 써 온 발라드보다 훨씬 담백한데도, 급하지 않지만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듯한 진행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거의 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지만 이 곡만큼은 별로 길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라이프. 언제 들어도 너무 좋음.. 라이프는 사랑입니다.ㅠㅠ
야마우치가 노래에 힘줘서 부를때 항상 이렇게 불러주면 좋겠다.

3인 체제가 된 후로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얘넨 꼭 강력한 한방이 될만한 곡을 다 초기 순서에 몰빵한다는 거다.
왜..왜지... 느슨해질만할 때 빵 터지면 좋지 않을까...
이번 앨범엔 와이어드랑 카타치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두괄식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
아무튼 이 앨범 최고 강력한 한방 중 하나인 샤리!! 전주 나오는 순간 느낌표 백만개를 띄웠다.
언뜻언뜻 들리는 가사도 작정하고 괴악한데 팬시한 느낌을 주는 말 그대로 이상한 가사들이다.
새삼 후지패브릭에 반하고 있는 중에 다시 정색하고 블루가 나와서 또 한번 큰웃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넨 이런 읽히는 수를 많이 쓰는데 그게 아쉬우면서도 귀엽고 귀여우면서도 아쉽고...
시무라의 수도 가끔 읽힐 때가 있는데 그건 좀 민망해서 아 덮어줘야겠다 모른 척 해야지 싶었다면 나머지 셋은 그냥 으이구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쏭달쏭 알 듯도 하지만 이것도 그냥 모른 척 해야지.


야마우치는 발라드도 참 잘 쓴다. 그리고 마케팅부는 완성된 발라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천재적인듯.
블루 아웃트로는 싱글에도 들어갔어도 좋았을텐데.. 처음 유튜브에 올라온 (아마 선공개 라디오를 녹음한 듯한) 블루엔 아웃트로가 제대로 들어있었던 걸 보면 싱글을 잘라낸건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을 것 같다. 마냥 어른의 사정일지, 아님 멤버들이 두 버전을 나눠보고 싶었던 걸지 '' 애니버전 한정판이 나왔어야 했으니, 아오하라이드를 놓고 보자면 아웃트로가 좀 헤비할 수도 있고..

블루의 긴 아웃트로처럼 연주가 돋보이는 부분들이 앨범 곳곳에 포진해있는데 이게 러닝타임을 겁나 길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ㅋㅋㅋㅋ
자의식이 분명하다 못해 선명한 데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좀 적당히 잘라도 좋았을텐데 싶기도 하다.
라이브 어레인지 수준으로 연주를 늘려놓은 곡들도 있으니; 나르시스트들이냐고! (농담)

처음엔 무슨 어드메의 월드뮤직인가 했던 마츠리노마에도 6분짜리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이 곡이랑 마지막 곡 졸업에는 여자 코러스가 들어가는데 좀..많이 올드하다 ㅡㅠ 코러스 넣은 언니 사진을 봤을 땐 이런 톤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ㅠㅠ
보컬이랑 코러스가 분리된 느낌. 야마우치 보컬이든 시무라 보컬이든 백퍼 안 어울림. 곡에는 나름 어울리지만.
월드뮤직인 줄 알았던 곡이 갈수록 일본 전통음악같아지는 신기한 노래

그리고 이건 또 어느 시대 로큰롤의 오마주인가 했던 efil은 LIFE를 거꾸로 뒤집은 제목이라고 한다. (소문자가 된 것도 대문자의 역이라고 생각해서 했을 거 같다.....)
역시 연주가 상당히 긴데, 계속 주제가 바뀌면서 들어가는게 끝날 것 처럼 끝나지 않아서 러닝타임을 계속 확인해봤닼ㅋㅋㅋㅋ
한방이 터질 듯 터질 듯 안 터져서 아쉬움

하지만 efil이 와이어드를 위해서 있는 거라고 하면 순식간에 납득이 된다!!
마츠리노마에 다음 곧장 와이어드면 어색했을 것 같다. 절대 안 될 건 아니지만 efil이 있음으로써 와이어드에 설득력이 뽷 살아남
사실 와이어드는 단독으로도 파괴력이 엄청나서 정말 반드시 싱글컷을 해야하는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당백이 가능한 노래.
앨범이 그 뒤 금방 나오는 바람에 원하는 만큼 충분히 돌려듣진 못했지만 ㅠ 양면 싱글은 진짜 적절한 한 수였음


플래시댄스부터는 소위 후지패브릭답지 않은 곡들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후지패브릭답지 않다'고 일컬어지는 곡들의 기준을 시무라보컬로 상상했을 때 잘 되나 안 되나로 나누는데 지난 EP는 확실히 시무라 보컬로는 상상하기가 좀 어려웠다.
근데 그렇다고 후지패브릭의 이전 작품에서부터의 통일성이 없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닌게, 거꾸로, 1집 듣고 4집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 있었겠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3집에서 4집으로 갈 가능성은 충분했듯이, 단서가 곳곳에 남아있었듯이 5집이 6집으로, 6집이 7집으로 변화했고 7집과 8집 사이에 있는 이 EP가 전체 디스코그라피 흐름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는 점이 후지패브릭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자기들이 하지 않았던 걸 계속 하려는 초기 모토가 지속되어 온 결과라는 생각.
곡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일관되게 음악적 신념을 가지고 가는 걸 보면 참 타협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딴 얘긴데 EP에서 두곡이나 가져온 걸 보면 진짜 어지간히 맘에 들었었나봄....

로보로그는 곡만 놓고 보면 되게 대중적인데 그게 요즘 컨템포러리팝; 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가사도 좀 특이한 편이다. 야마우치는 되도록 이런 컨셉 가사는 지양해줬음 좋겠다. 1차적 표현이 많아서 좀 뭐랄까 그...ㅇ..오글..
근데 귀에는 쏙쏙 와 박힌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자주 흥얼거리는 게 샤리랑 로보로그.
후지 전체 스펙트럼을 만든다면 엄청 동떨어진데 붙어있을 것 같은 곡인데 그걸 소화해내는 게 신기하다.
세사람 중 다이짱이 가장 폭넓게 음악을 듣는 게 아닐까 추측중.
들으면 들을수록 설득되어버리는 곡.

바타아시 파리나잇에서 갑자기 국면이 훅 바뀌어서 부드러운 sing으로 바뀐다. 가만 보니 FT79도 그렇고 챕터가 바뀔 때마다 소품곡을 하나씩 넣어놓은 듯.
이건 언뜻 봤을 때 가사가 가벼운 듯 진솔해서 되게 좋았는데..
지금 다시 펼쳐보니 정말 좋다.

달이 웃고/벌레가 노래해/아아/그건 근사한 목소리야//
별이 없는/밤에 노래해/아아/그것밖에 할 수 없잖아//
너를 생각하며/나는 노래해/라라라, 하고//

라이너노트에서였나, 인터뷰에서였나 야마우치가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라고.


카타치에서 뒷심이 제대로 발휘된다. 만약 이번 앨범에서 '후지패브릭다운' 노래를 꼽으라면 이 노래가 단연 톱!
재밌는 건 질량이 무거운 편이 아니라 어디 드라마 튠에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제이팝같은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뽕끼ㅎㅎ나 타령같은 느낌이 시침 뚝 떼고 녹아있는 점이다.

그리고 앨범을 닫는 졸업. 개인적으로 졸업이란 말을 대놓고 제목에 쓰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이미 15곡 전곡의 제목이 너무나 즉물적이런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습니다... 아아 3인의 아저씨... 처음 제목 보고 두근댔던 설렘을 돌려줘...
막연하게 지브리 초기작들의 OST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우군의 히키가타리로 들어보고 싶다.
편안하고 아늑한 노래인데, 참신성이나 매력도는 졸업의 역재생인 리버스가 더 크다. 여러가지 상징적 맥락을 갖는 건 알겠지만, 으-음 카타치로 마무리했어도 좋았을 것 같기도 한데....

24트랙인 아날로그로 작업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가 복잡하게 쌓여있을 때도 하나하나 다가온다.
연륜이 어디 가지 않는다고 괜히 내가 뿌듯.

싱글컷 됐던 것 빼고 베스트 3: Gum, 샤리, 카타치
근데 이번엔 정말 곡마다 서로서로 촘촘하게 얽혀있는게 느껴져서, 오랜만에 앨범으로 듣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게 효과적이었든 아니었든, 신경 쓴 티도 팍팍 나고.. 올드한 감성과 센스로 신경을 썼다는게 조금 아쉬운 면도 있지만
후지패브릭이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밴드였다면 이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을 거다. 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촌스럽고 서투른 사람들의 진지함으로 여기까지 온 밴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