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4~2015.02.23
런던, 파리, 브뤼셀
비행기는 12시 45분 출발했다. 날씨가 추웠고 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천에서 뮌헨까지의 비행시간 11시간 35분, 뮌헨에서 히드로까지의 비행시간 1시간 5분을 포함하여 올해 발렌타인 데이는 31시간 45분을 살았다. 발렌타인 데이라기보다는 발렌타인 베이비 페그찡 생일을 오래오래 보냈다는 데 더 의의를 두고 싶다. 트위터로 축하멘션 보낼 때 이걸 쓰면 좋았을텐데.. 아니다, 아니야... 허허허
제대로 움직일 시간은 8일밖에 없는, 그것도 해가 짧은 겨울 여행이다. 런던에만 5일을 할당한 건 파리보다 런던에 성지순례를 할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다 격렬하게 영드에 불탔던 작년에 갔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후회는 없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별로 늦은 체크인이 아닌데도 비행기의 창가쪽, 복도쪽 빈좌석이 없었다. 가운데라도 좋으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좌석을 달라고 했는데 운좋게도 왼쪽 좌석이 비어있었다. 분명 만석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거의' 만석이라는 말에 앞을 생략했다고 믿고싶다. 누군가 비행기를 놓쳤다는 끔찍한 사실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왼쪽 좌석이 빈 덕분에 많은 가방 (늘 메고 다니는 작은 등가방, 면세점 가방에 쑤셔넣은 큰 숄더백, 야상 속에 멘 크로스백)을 머리 위 선반에 올릴 필요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키가 작아서 머리 위 선반에 올리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꺼낼때도 마찬가지니 귀찮은 일이다. 벌써 유럽에 도착해있는 친구가 말한대로 기내 영화 중에는 재밌어보이는 게 없었다. 전날밤 상당수의 앱과 사진을 지워가며 꾸역꾸역 밀어넣은 사이먼 필모를 봤다. 스페이스드 시즌 2와 코네토 트릴로지, 가끔 화장실 (양 복도쪽 두 자리 승객이 모두 잠들었을 때는 참느라 힘들었다), 두번의 기내식을 먹고 가끔 쪽잠을 잤다. 11시간 35분은 정말 길었다.. 뮌헨에 도착했을 땐 무릎이 콕콕 쑤셨다. 수하물을 부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들고 타려다 가위가 들어있어서 부쳤는데ㅋㅋㅋㅋ 미친 생각이었다.
출발전 쉥겐조약 어쩌구를 주워듣고 독일에서 입국심사를 하는 줄 알아서 부리나케 커넥팅 플라이트 표지판을 따라 이동했지만 영국은 쉥겐조약 가입국이 아니었다. 한시간이나 여유가 있어서 게이트 근처를 구경했다. 뮌헨 공항 화장실은 다 높고 커서 유럽에 온게 조금 실감났다. 손을 씻고 말리는 데는 페이퍼가 없고, 드라이어나 재활용이 가능한 수건살균기를 이용했다. 센서에 손을 대면 벨트에 타이트하게 걸려있던 수건이 늘어나고, 손을 닦은 뒤 다시 센서에 손을 대면 내가 썼던 부분은 다시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런 거 처음 봐! 그리고 긴시간 대기해야하는 승객들을 위해 라운지에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돈을 내면 아예 들어가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개인용 박스도 있었다.
게이트 근처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친구한테 낚임 (영국감자=사이먼)
진짜 아드레날린 폭발했었는데 ㅠㅠㅠㅠ
수학여행인지 캠프인지 왜 주말저녁에 단체여행이 시작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시끄러운 독일 중딩들(얼굴이 고딩이었으니 실제로는 중딩이겠지.. 잘생기고 이쁨) 사이에 묻혀 다시 1시간을 비행한 끝에 드디어! 영국에 도착했다! 착륙할때 중딩이들이 박수를 쳐대서 되게 웃겼다. 나도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스무스한 짐찾기와 스무스한 입국심사를 거쳤다. 동아시아 단신 단기체류 여자애는 쉽게 통과된다. 영어가 저질이라도... 어쩌면 영어가 저질이라서..? 큽
생각보다 빨리 수속이 끝나서 예약해놨던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를 한시간이나 땡길 수 있었다. 역시 저질영어지만 캔아이..?를 무한 반복하고 주요사항은 텍스트로 보여줬더니 해결됐다. 예약시간 바꾸려면 한국에 두고 온 결제카드가 필요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그냥 컴퓨터로 예약내역을 바꾸더니 내가 가져온 이티켓에 도장을 꿍 찍고 바뀌는 버스편을 써주는 것으로 끝났다. 일처리하는동안 해피 발렌타인~이라며 창구의 직원들에게 다른 직원이 다가와 작은 초콜릿을 주고 갔다. 사실 내 주머니에는 말랑카우가 아주 많이 들어있었다. 친절한 외국인을 만나면 감사인사를 표하려고 가져갔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 휴.. 내가 이렇게 쑥쓰러움이 많은 사람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쑥스러움보다도 머리가 나빠서 주머니의 말랑카우를 기억하지 못해서 못 주는 일이 더 많았다. 암튼 그 초콜릿 때문에 말랑카우가 생각나서, 버스 바꿔주는 언니한테 줄까말까 짧은 시간동안 얼굴이 빨개지게 고민했는데 결국 못 줬다. 수상해보일까봐 못 줬지만 줬으면 좋았을 거라고 돌아서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오후 9시 경 빅토리아 코치 버스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약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가 플랫에서 마중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대합실을 구경했다. 암튼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던 거 같다. 런던 십대 무섭긔 덩치큰 스킨헤드 무섭긔... 여기는 캐리어에서 손을 떼는 순간 내 것이 아니라면서요? 런던에서의 긴장은 다음날 집에 돌아올때쯤 풀렸다. 그렇게 안 무서운 동네였다. 카메라랑 핸드폰만 수시로 확인하면 안심이었다. 십대하고는 눈만 안 마주치면 되는 것이다..
친구는 가족여행으로 한달 유럽 일주 계획을 잡았고, 내가 영국에 도착하기 이틀전부터 영국에 입국해 있었다. 너무 감사한 제안을 받아 영국에서의 일정이 겹치는 사흘동안 친구 가족이 에어비앤비로 렌트한 플랫에 함께 머물게 되었다. 이걸로 숙박비가 얼마나 절약됐는지 ㅠㅠ 게다가 아침까지 매일 챙겨주시고 ㅠㅠㅠ 감사의 뜻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당봉 보고 있쒀?) 일반 주거용 맨션 건물 3층에 있는 정말 근사한 복층 플랫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일반 가정집을 빌리는 것이다보니 지켜야할 것들이 호텔과는 조금 달랐다. 퇴실날 쓰레기를 모두 비워야 하는 것, 이 집 부엌에 있는 의자는 앤틱가구이니 조심해서 움직여야 하며 특히 그 중 하나는 건들지도 말 것, 문이 잠겨있는 방은 들어가지 말 것. 침구와 타올은 에어비앤비에 속한 전문 업체에서 제공하고, 쓰레기는 투숙객이 비우지만 퇴실 후에 업체에서 와서 제대로 싹 청소도 하고 간다고 한다. 우리집보다 따듯하고 밝고 건조한 집이었다. 건조한 건 이후 숙소들도 마찬가지라 신경이 좀 쓰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내내 내 피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첫날 둘째날 사진은 정말 피부 쓰레깈ㅋㅋ
뭐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하나도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 어찌어찌 짐도 풀고 뮌헨-히드로 선에서 기내식으로 받은 샌드위치도 야식으로 먹고 샤워도 하고 잠도 잤다. 영국 물은 석회수란 얘기를 들었지만 딱히 서울과 다른 건 못 느꼈다. 머릿결이 점점 뻣뻣해진 것 같긴 한데 이건 뭐 여행하면 어쩔 수 없는 거구.. 마시는 수돗물에서도 냄새가 전혀 안 났다. 아리수의 염소 냄새도 안 나서 좋았다. 다음날 친구의 말해주길 상당히 긁으며 잤다는데 그저 민망하고 미안할 따름..ㅠㅠ 두시간마다 깼는데 그걸 또 깨알같이 시간을 쪼개서 긁었나보다. 건조해서 더 심했나보다. 아 정말 아토피 국가에서 장애로 지정해야 한다
아무튼! 드디어 런던인 것이다! 반년넘게 상상만 하던 곳에!
15.03.06 18:15 작성
16.01.03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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