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영국 날씨에 대해 들은 것이 많아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상상하던 날씨 그대로였다. 흐린 하늘과 회색톤의 거리, 그렇지만 별로 춥지는 않다. 리버틴즈를 들으며 어젯밤 플랫으로 올 때 기억해둔 펍을 이정표삼아 빅토리아 코치 역에 도착했다. 긴장했지만 길을 잃지 않았다. 버스 스테이션은 따로 있지만, 철도만으로도 세개의 언더그라운드 노선과 두개의 내셔널 레일 노선이 교차하는 아주 큰 규모의 역이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이스터 카드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서고 보니 막상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급하게 유랑을 검색해서 '오이스터 카드 앤 톱업 플리즈' 하며 돈만 내밀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앞에는 프랑스 커플과 중동계열의 여자아이들 서넛이 있었다. 프랑스 커플은 아주 오랫동안 역무원과 대화했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육점몇파운드로 2015년부터 조금 저렴해졌다는 프라이스캡을 얼추 계산해보니 오이스터에 트래블카드를 올리나 그냥 충전해서 쓰나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 보증금 6파운드를 더해 35파운드를 내밀며 톱업해달라고 하면 되겠거니 하며 중동계 남성인 역무원 앞에 섰다. 역무원이 갑자기 나보고 무슨 질문을 했고 예상치못한 상황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거듭되는 파든? 중에 역무원은 코팅된 종이를 내밀며 설명을 시작했다. 트래블카드를 몇일짜리로 올리는지에 따라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는지 정리된 도표였다. 내가 얼마나 오래 런던에 있을 거냐를 물어보는 거였다. 무근본 무대책 종자인 나는 '음...아마 5일?'이라며 확신이 없어 급하게 아이캘린더를 켰다. 다행히 5일 체재하는 게 맞았다.. 다시 몇존까지 가냐길래 일단 오늘 가는데서 가장 멀(먼 것으로 추정되는) 핀즈베리 파크를 얘기했더니 2존이라고 알려줬다. 내가 계산했던 것처럼 톱업을 하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아무튼 역무원은 트래블카드를 올릴것을 강력추천하고 있었다. 버스나 전철이나 아무거나 막 타도 된다고 여러번 반복해 말해줬다. 페리를 타냐길래 아냐 페리는 안타..라고 얘기했는데 이게 페리도 탈 수 있단 얘긴지 페리는 못탄다는 얘긴지는 못알아들었다. 지금 검색해보니 페리도 탈 수 있다! 한번 타볼걸 그랬다. 하지만 굳이 페리를 탈 일이 없어서.. 그리고 겨울에 페리는 좀..^^; (선입견) 지금 알았는데 이번 여행 내내 쓴 교통안내 앱 시티맵퍼는 택시, 언더그라운드, 버스 이렇게 세개만 서비스하는 것 같다. 그러니 탈 기회가 없었구나.
암튼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다 한번 올려놓으면 충전 신경쓸 필요도 없을거고 무엇보다 이렇게 추천해주는데 안 사겠다고 말할 영어 깜냥이 안돼서 올려달라고 했다. 역무원은 시크하게 트래블카드로 바꾸기 위한 차액을 요구하고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 5파운드는 파리로 나갈때 (아이캘린더를 보며 파리로 나가는 일정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했다. 한글인 걸 보고 사우스 코리아?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킹스크로스역에서 꼭 환급해가라는 말도 해줬다. 한번도 따듯한 표정을 지어주진 않았으며 잔돈도 틱틱 던졌지만ㅋㅋㅋㅋㅋ 태도와는 달리 이것저것 다 챙겨주려고 했던 프로페셔널 역무원 아저씨 고맙습니다.. 많이 깝깝하셨죠.. 그래서일까요 제게 오이스터 카드 케이스는 안 주셨드라구요...
고마워서 말랑카우 주고싶었는데 창구 생김 특성상 좀 이상한 그림이 될 거 같아서 미적대다 또 타이밍을 놓쳤다.
우리나라처럼 돈을 그냥 쑥 내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약간의 문화컬쳐를 받음.
시티맵퍼 앱으로 핀즈베리 파크를 검색해 빅토리아 라인 노스 바운드를 탔다. 듣던대로 튜브는 깜찍하고 작았다. 승객도 적었다. 역사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쥬빌리를 탔을 것 같다. 좌석마다 팔걸이가 있어 개인공간이 확보된 기분에 조금 긴장이 풀렸다. 런더너들을 엄청 관찰하고 싶었는데 쫄보라서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가끔 나를 엄청 관찰하고 싶지만 역시 차마 그러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어린애들은 대놓고 보더라만.. 영국인들 체형에 튜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나한테는 맞춤의자마냥 쾌적했다.
핀즈베리(핀즈버리?) 파크에 도착했다. 개찰구가 아래 사진처럼 아주 간소했다. 처음 내려보는 역 개찰구가 이런 식이라 다른 역들도 다 이런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딱히 외곽 동네도 아닌데.. 작은 역이라 그런 걸까.
핀즈버리는 조금 추웠다. 여기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엄청 두근거린다. 시티맵퍼에 의지하여 다음 정류장을 찾아갔다. 한번 골목을 잘못 들고 두번 작은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했다. 내가 길치라서 그렇지 각 정류장마다 알파벳이 부여되어 무척 찾기 쉽게 되어 있었다. 내가 탈 버스가 서 있길래 열심히 뛰어갔는데, 기사는 안에 있는데 불도 꺼져있고 문도 열려있지 않았다. 눈치상 배차 간격을 기다리는 건가 싶다가도 이러다 날 두고 떠나면 얼마나 허무할까 싶어서 옆에 있던 언니한테 대기중인 차냐고 더듬더듬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굉장히 웃기는 것을 보듯이 활짝 웃어주었다. 이 언니는 나를 대체 몇살로 보고 있을까 좀 궁금해졌다. 안심하고 기다리니 몇분뒤 차가 열렸다. 그 정류장에 있는 네다섯명의 사람들이 모두 차에 탔다. 이 정류장이 종점이고 여기엔 이 버스 한대밖에 안 서는 걸까. 검색하면 알겠지만 귀찮군.. 버스기사에게 인사말을 해야하는 걸까 고민했는데 앞서서 타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잠자코 오이스터를 찍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나 뿐이었다! 기분이 좋아서 열심히 셀카도 찍고 바깥 풍경도 찍었다. 나중에 버스 1층에는 2층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내 뒤통수만 보였을테니 괜찮다. 버스는 엄청난 경사의 언덕을 올랐다 내려갔다. 가지런한 집들 사이로 쭉 뻗은 길이 인셉션에 나오듯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것 같았다. 시티맵퍼와 버스 전광판, 방송과 창밖으로 보이는 정류장의 알파벳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벨을 누르고 무사히 내렸다.
Western Park! 코네토 트릴로지 ('피와 아이스크림 3부작') 첫편인 Shaun of the Dead의 로케지다.
숀 커여워...
바로 이 배경입니다. 숀네 집에서 슈퍼마켓까지.
웨스턴파크 정류장에서 구글 GPS를 보며 헤매고 있으니 뭔가 이상했는지 웬 오빠가 다가와서 뭘 찾고 있냐며 런더너에게 기대한 적 없던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돌려말할 재간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덕밍아웃을 해버림. ㄷ..두유노 숀옵더덷? 엄..잇쩌 좀비무비... 괜찮아 다시는 안 볼 사람이야.. 그렇지만 부끄러웠다..! 그리고 친절한 런던오빠는 뭔 영환지 몰랐다ㅋㅋㅋㅋㅋ 더 부끄러웤ㅋㅋㅋㅋ 왜 모르고 그래욧ㅋㅋㅋㅋㅋ 여기가 그 영화 로케지라고 하니 정말이냐며 되묻던..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OTAKU... 이 동네 다운타운은 저쪽인데 정반대인 주택가에서 길을 잃은듯 보여서 알려주려고 했다고 한다. 친절해! 고마워요! 잠시 함께 길을 걸어가다가 그 오빠는 자기 목적지였던 빵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 맞은편에 론디스 슈퍼마켓이 있었다. 숀네 집은 영화를 다시 확인하며 론디스에서 역주행해서 찾아냈다. 비행기에서 혹시나 싶어 안 지우고 뒀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두두둥
일요일 아침이라 차들이 하나도 안 빠짐 ^_T
영화에서는 허리까지 오는 낮은 문이었고 왼편의 울타리도 없었는데 저렇게 바뀌어있었다. 순례객들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레코드를 던지며 좀비랑 싸우던 뒷뜰이랑 집 내부는 세트장이라고 한다. 근데 뒷뜰이 나오는 씬을 아무리 확인해봐도 예산도 없던 사람들이 저걸 세트로 지었단 말인가 싶은데 흠... 집에 딸려있는 뜰이라해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조인 것 같다. 아쉬움..
이 사진 찍고 인증 셀카도 찍는데, 필연적으로 이 앞집을 마주한채로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앞집에서 창가 블라인드가 쑥쑥 올라가는 게 보여서 다시 또 절찬 홍당무 타임.. 그러나 꿋꿋이 찍었다. 나무때문에 잘 안 보였을거라고 믿는다.
길 대각선 맞은편에서 보면 이런 느낌.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있다.
영화 시퀀스처럼 길을 따라가봤다. 동영상 찍을걸 이제 와서 후회가 되네~~
론디스가 보인다!
주위 가게는 좀 바뀌었지만 론디스는 건재하다.
똑같아!!
주인 아줌마한테 (인도계? 중동계?)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익숙한 느낌 ㅋㅋㅋ
아이스크림 박스 위치도 변하지 않았다. 과연 코네토가 있을것인가
있다! 우연인지 일부런지 딸기맛만 있었닼ㅋㅋㅋㅋㅋㅋ 런던 와서 첫 코네토!
밖에 태풍이 불어도 먹었겠지만 다행히 그렇게 많이 춥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든 손이 좀 시려운 정도.
위의 하얀 부분은 한국과 달리 폭신한 느낌이었다. 크기는 작은 편. 순식간에 먹어치울 수 있다. 맛있었다.
론디스쪽에서 본 숀네 집.
그러고보니 조깅하는 사람들과 산책나온 개들이 많았다. 소형견은 거의 못보고 거의 중대형견.
* 이웃 감시 지역 *
사실 숀오브더데드 하면 윈체스터인데, 가깝지도 않고 지금은 폐쇄해서 겉모습밖에 못 본다기에 패스했다.
넬슨로드 지역주민들을 뒤로 하고 스페이스드 로케지 tufnell park로 이동했다. 웨스턴 파크에서 버스로 20분정도.
팀 귀여워....
플랫을 빌리기 위해 만난지 일주일된 남녀가 커플행세를 하는 얘기인데 아무튼 플랫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진짜 재밌으니까 꼭 보세요 두번 보세요 두 시즌짜리라 짧아요 원래 시즌 3 나왔어야 하는데 채널 포 나쁜 놈들이...
투프넬 파크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멋진 건물을 봤는데
알고보니 요가 학원이었다.
유럽인처럼 생긴 고양이
2층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본 가지런한 건물들이 예뻤다.
플랫 도착!
다 동시에 찍은 사진인데 필터를 씌우니 다른 날 찍은 것 같다. 첫번째 사진이 당시 날씨를 잘 반영했다.
드라마를 찍었던 때랑 (1999-2001) 거의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숀네처럼 건물 전체에 흐르는 '안에 사람 살아요' 포스가 강해섴ㅋㅋㅋ 좀 뻘쭘했다.
시즌3까지 나왔으면 좋았을텐데..에드가랑 사이먼이랑 제시카랑 대담하듯이 찍은 후일담의 쿠키에 나온 팀이랑 데이지랑 넘 달달해서 ㅠㅠ 바로 저 현관에서 콜린 껴안고 뽀뽀하던 걸 생각하니 또 마음이 흐_뭇
오전 순례를 마치고 예정대로 영국도서관과 영국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근처에 식당이 있지 않을까 내내 두리번거렸지만 나같은 쫄보가 쉽게 갈만한 곳들이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세인트 판크라스 역 근처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벌써 12시였다.
세인트 판크라스역. 배가 고프니 날이 춥게 느껴져온다.
빠밤
3월부터 마그나카르타 전시가 있다고 한다. 별 생각 없었는데 막상 3월부터라 지금은 못 본다고 하니 갑자기 굉장히 아쉬워졌다. 견물생심. 학생들이 노트북을 들고 좌석을 메우고 있었다. 자료열람실은 따로 열람자 등록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공휴일에는 아예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건물 중심부에는 King's Library라고 조지3세의 컬렉션을 모아 놓은 폐가식 서가가 있었다. 조지3세의 서재가 지금의 영국박물관 자리에서 도서관 개념으로 운영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요청하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데, 실제로 얼마나 이용되는지 궁금했다. 분명 디지털로도 구축되어 있을텐데.. 디지털보다는 역시 아날로그져~~ 하는 연구자들이 반도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듯
쓰다보니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아르코 웹진에 개략적으로 소개되어있었다.
http://webzine.arko.or.kr/load.asp?subPage=10.View&searchCate=08&pageType=Webzine&page=1&idx=380
영국박물관에 도착하니 배가 너무 고팠다. 오는 길에 적당한 음식점을 찾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주위는 온통 기념품점이었다. 기념품점 아니면 펍. 쫄보답게 아침부터 펍에 들어가기는 무서웠다. 애초에 술을 마시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박물관 정문 안 광장에 푸드트럭이 있었다. 속을 파내고 소세지를 끼워 소스를 뿌린 바게트를 팔았다. 오리지널이 4.95유로. 잔돈이 딱 맞게 떨어지지 않아 지폐와 동전을 주섬주섬 꺼내 펼쳤더니 잠깐 멈칫하다가 10유로짜리 지폐만 가져갔다. 왜! 서양인들이라 산수를 못하나 (※인종차별) 했는데 오히려 이쪽 동네 친구들은 일본에서처럼 잔돈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주는 걸 선호한다고 한다. 는 말인즉 내가 잘못 내민 거 같다...
영국 동전은 모두 8종이다. 그나마 6펜스짜리가 없어지면서 1페니, 2펜스, 5펜스, 10펜스, 20펜스, 50펜스, 1파운드, 2파운드. 5파운드부터 지폐가 된다. 2단위는 왜 갖고 있는지 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제일 처음 동전을 만진게 오이스터 카드를 만들면서였는데 그때서야 내가 얼마나 안일했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쥔 동전이 영국 동전의 모든 종류라는 보장이 없는 것에 식은땀이 흘렀다. 동전때문에 바보가 되는 일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바게뜨는 머스타트가 조금 매웠지만 맛있었다. 딱딱하고 질긴 바게트가 한국에서 먹는 것과 흡사했다. 다만 양이 너무 많아서 절반만 먹고 나머지는 잘 싸서 가방에 넣었다. 빵가루가 떨어지니 주위에 비둘기가 어슬렁거렸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비둘기를 몰아대고 싶어했다. 비둘기랑 같이 나도 놀라서 퍼덕였더니 애가 뻘쭘한 듯 슬슬 물러났다. 정문 쪽에서 한국 여자애들 서넛이 꺅꺅대며 사진을 찍다가 옆 현지인에게 부탁해서 단체사진을 찍고, 또 사진을 찍어준 사람과도 셀카를 찍었다. 정문에 연결된 해자 위로 다리를 건너 광장으로 오게 되어 있는데, 다리의 두꺼운 돌난간에 아이들을 올려놓고 포즈를 취하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날씨도 좋고, 여유롭다.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시간은 없으니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시 반에 문을 닫고 2시 경에 들어갔으니 세시간 반 정도 볼 수 있다. 클락룸에서 1.5파운드에 짐을 보관하고,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카드를 맡기면서 오디오 가이드를 3파운드에 빌렸다. 드럽게 터치가 안 되는 가이드였다. 감압식인걸 보니 어딘가 터치펜이 있어야 할텐데 없었다. 이왕 만드는 거 터치펜도 붙여줬으면 좋겠다..는 다른 사람들 후기를 보니 달려있는 게 정상인데 내꺼가 비정상이었던 거 같다 ㅠㅠ 어쩐지 이상하더라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로제타석. 두번째 사진 둥그런 테로 둘린 상형문자가 이집트 파라오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형문자는 알파벳처럼 표음문자라는 사실! (여태 몰랐음) 로제타석이나 유물들에 대한 학술적인 정보는 굳이 이 포스트가 아니라도 인터넷에 많으니 생략해야겠다. 여력이 되면 영국박물관 소장품 특집 포스팅을 해보고싶다.
패기있게 발길 닿는대로 높은 층에 올라갔다가 오디오 가이드를 켜보니 주요 코스 안내가 있길래 다시 내려와 로제타석이 있는 이집트관부터 시작했다. 사람이 많다. 단체 관광객도 많다. 그런데 가설된 벽으로 가려진 공간도 많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이 유물 다음에 뭐가 보일때까지 걸어 어느쪽으로 꺾으면 다음 화면의 유물이 나옵니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가는 길에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된다. 메인테넌스 중.... 다음 특별전을 위한 준비 중... 밀려오는 깊은 빡침.. 람세스상도 가벽으로 가려져있어서 반대편의 다른 파라오상을 찍었다. 대체품같은 느낌으로 대해서 미안하지만.. 아무튼 없는 유물을 스킵하며 1층의 이집트 관 설명이 끝나고 파라오 등이 전시된 <Living and Dying> 전이 열리는 3층 트러스트 갤러리 가는 길을 설명해주는데, 이 길은 정말 도저히 모르겠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박물관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도 미로나 다름없는 공간인데 헤매는게 당연하지만, 왠지 박물관에서 길을 잃으니 스스로에게 조바심이 났다. 1층 이집트관에서만 헤매느라 한시간을 보낸 것 같다.
헤맨 걸 빼면, 1층 이집트 - 파르테논 - 그리스,로마 - 앗시리아, 네레이드, 메소포타미아 - 지하층 북/남미, 호주 - 1층 계몽관 (구 킹스라이브러리, 개장 당시의 영국박물관 건물) - 3층 트러스트 갤러리 (이집트 파라오 및 중동 초기 문명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 - 인도 - 4층 한중일관 - 다시 트러스트 갤러리 - 유럽관 순으로 돌았다.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최대한 덜 헤매는 수밖에! 3층 이집트 파라오실로 가는 것은 뒤로 미루고 가까운 파르테논 신전 쪽의 가이드를 켰다. 음... 동편 박공은 모두 다음 고대 그리스 특별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지금 영국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니 2015년 3월 26부터 7월까지 하는 전시라고 한다. <discover the body in ancient Greek art> 서편 박공도 일부 차출되어 자리가 비어 있었다. 처음엔 파르테논 신전 루트로 세팅된 가이드를 틀었지만 곧 숫자를 눌러 유물 하나하나마다 설명을 듣는 식으로 바꿨다. 그러지 않으면 자리에 없는 유물 설명만 듣다 끝날 것 같았다. 다음에 여행갈 때는 공공기관은 꼭 직전까지 홈페이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무쳤다. 그럼 길도 덜 헤매겠지?
유물 관람은 그 유물 자체보다도 (어차피 손상됐는걸) 맥락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디오 가이드에 담긴 내용은 도움이 많이 됐다. 듣는 동안에는 교양이 복리식으로 적립되는 기분이 든다. 어릴적에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오기 전에라도 열심히 했으면 지금도 기억이 날텐데. 주로 미술관 쪽 책만 읽고 왔더니 지금 영국박물관을 회상해도 느낌적인 느낌, 아스라한 감각만 남아있다. ㅎㅎ.. 펍이랑 까페 순례하며 미남이나 구경할걸 그랬지...... 언젠가 다시 유럽에 갈 수 있겠지. 그래도 한번은 가볼만한 곳이었다. 오디오가이드가 없으면 심심했겠지만 설명이 있으니 아 이것이 그것이구나 감동하는 재미가 있었다. 유럽관부터 밧데리가 나가는 바람에 마지막 30분정도는 가이드 없이 돌아다녔지만. 정가 주고 빌렸으면 속상할 뻔.
목욕 중 인기척에 깜짝 놀라 몸을 가린 비너스. 얼마나 잘 가렸는지 주위를 아무리 빙글빙글 돌아봐도 창피할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에서 발견된 현존 최고의 청동 두상. 지금 찾아봤는데 기원전 삼백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은 계급의 베르베르인이었을 거라고. 리비아 지역 사람이라는데 그리스와 리비아가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지금 확인해보니 그렇게 떨어져있지 않다. 아무튼 지중해를 둘러싸고 여러 국가가 무역같은 걸 했었나보다.
귀여워서..내 새끼손가락 정도의 높이. 장식품으로 쓰였을지 부장품으로 쓰였을지.
엄마가 좋아하는 모아이 석상
석상 뒷면도 정교하고 귀엽다.
계몽 Enlightenment 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킹스 라이브러리. 킹스 라이브러리가 국가에 기증될 때 기존 영국박물관에는 이를 수용할 공간이 없어 지금의 영국박물관 건물을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장서들을 신축한 영국 도서관으로 옮기고 난 후에는 계몽관으로 바뀌었고 서가를 구 의회 도서관의 장서들로 채웠다. 의회 도서관의 장서들도 폐가식으로 이용 가능하다고 하니 인테리어와 도서관 기능을 한번에 잡은 셈이다. 현재 계몽관에 소장된 유물과 작품들은 1680-1820 사이의 유럽과 미국이 당시 계몽 사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양인들의 꿈과 희망이 집결된 느낌.
the statue of ain ghazal : The earliest large-scale representations of the human form
파라오 미라실에는 특히 사람이 많아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두리번거리다가 폐장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사람이 줄어든 다음에 다시 가서 찬찬히 봤다. 파라오는 어릴적에 '세상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이야기' 시리즈의 파라오의 저주로 처음 알아서 역시 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왕의 미라를 만든 당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같은 선상에 두고 있었을텐데. 그러고보니 탐험대원들이 연달아 병사했던 건 결국 풍토병 때문이었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화려하고 거대하고 쓸쓸한 파라오의 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미라 관을 한꺼번에 보니 그 무게가 좀 가벼워져버리는 것 같다.
인도, 페르시아 문물이 전시되어있던 동양관은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석상이나 동상이 많았던 것이 인상적.
일본관과 한국관도 번갯불에 콩구워먹듯..^_T
한국관의 전시물은 약탈 유물이 대부분인 이집트나 그리스관과는 달리 모두 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대여한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 예술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조명도 산뜻하고 쌔거!! 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인테리어였다. 사람은 일본관에 비해 적었다.
네시반이나 다섯시에는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념품샵에서 로제타석 마그넷을 사고 가이드까지 반납하고 보니 마감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클락룸에 뛰어가야 할 정도였다. 아, 기념품샵에서 마그넷을 샀는데 아무런 포장이 없길래 넣을 게 없냐고 했더니 책한권은 족히 들어갈 크기의 종이백에 넣어주었다. 영국도서관에서는 사이즈 적당한 비닐에 넣어줬는데..그리고 거스름돈 1페니를 안 줬다. 팁이 붙는건지, 종이백 값을 받은건지(나중에 알아봤는데 그런 거 없다고 함), 그것도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지 잔뜩 물음표를 띄우며 일단 맡겨둔 짐을 찾고 다시 돌아가 먼저 왕따시만한 종이백을 좀 작은 비닐백으로 바꿨다. 캐셔 아저씨는 일부러 좋은 걸 준거였다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고..고맙.. 바꾼 비닐백도 씨디 한장은 들어갈만한 크기였다. 덧붙여 마그넷은 신용카드보다도 작았다. 그리고 나 1페니 안 받았다고 하니 응 안줬지! 이러면서 (뭐야 알고 있었어?) 근데 지금 계산대 운영이 끝나서 못 여는데 좀 기다려줄래? 갖고올게 라길래 됐다고 서비스차지라고 하며 그냥 돌아나왔다. 사실 영국엔 팁 문화가 없다. 있더라도 누가 1페니를 팁으로 줘 ㅎㅎㅎㅎㅎ 내 페니를 맡아놨다는 듯 너무 자연스럽게 거스름돈을 쓰루하던 아저씨가 괘씸하니 성격나쁜 사람의 소심한 복수정도로... 음 참 쿨하지 못하군...
가능하면 트라팔가 광장에서 노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날도 흐렸고, 해도 일찍 지니 벌써 초저녁 짙은 감색 속에서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2층 명당자리에 사람이 있길래 1층 오른편에 앉았는데 여기서 2층 좌석 모니터를 발견하게 된다. 오...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히 CCTV가 있겠지만 그걸 승객들이 다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 아침에 찍어대던 셀카가 머릿속을 지나가지만 의연해지기로 했다.
뮤지컬 극장이 많은 동네를 지나가는 중 (홀본 스트리트일까?) 2층에서 내 또래보다 조금 어린 듯한 청년이 'shit'을 연발하며 비틀비틀 내려왔다. 고개를 못가누는 저 몸짓은 분명 술에 취했든 약에 취했든 제정신은 아니다. 1층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왼쪽 좌석에는 일본계로 추정되는 동양계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할머니와 나를 요래조래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청년을 좀더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쪽도 나를 관찰하고 싶어하는 거 같아서 황급히 눈을 깔고 창밖을 보는 척 흘깃흘깃 쳐다봤다. 청년은 내내 간헐적으로 슅슅거리다 악기점이 드문드문 있고 담배냄새가 날 것 같은 골목에서 휘청거리며 내렸다. 이것이 바로 소문의 런던 틴에이져인가..! (심장 벌렁벌렁) 얼굴은 완전히 내또래였지만..!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했다. 포근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신나게 웃는 무리들, 여행객들, 키스하는 커플들.. 나처럼 혼자 온 한국인 여행객을 발견하고 서로 사진을 부탁했다. 내 카메라가 자꾸 초점이 나간다며 폰으로도 찍어주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멀리서 빅벤 종소리가 들려왔다.
빅벤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직도 긴장중이라 열심히 경보함. 국회와 빅벤을 한꺼번에 조망하려면 강을 건너 런던아이쪽에서 보는게 가장 이쁘다고 한다. 다리 위에는 사람이 되게 많았고 난간은 생각보다 너무 낮아서 누가 밀면 퐁당 빠질 것 같은 기묘한 긴장 속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소매치기라면 여길 노릴 거 같고 막..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너무 좋다. 런던아이는 보라색 조명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물결처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바퀴를 빙 돌아 야경을 둘러봤다. 관광객도 많았지만, 아마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빅벤이 주위 소음 속에서 다시 또 울렸다. 적당히 분위기를 냈다 싶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쉽다... 런더너들은 퇴근길 당산역에서 내가 느끼는 촉촉함을 여기서 느끼고 있겠지. 크으으으으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길에 채플린 분장을 한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부탁도 안 했는데 같이 사진을 찍고는 돈을 뜯는 삐끼라는 걸 유랑에서 봤기 때문에 눈길도 안 주고 쌩 도망쳤다. 어떤 흑인 오빠가 같이 사진 찍던데 괜찮을지...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벌써 지났고, 도착하니 뜰 안 개방 시간이 막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경비가 나와서 문을 잠근다며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나가게 하고 있었다. 경비가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여유롭게 기념사진을 계속 찍었다. 위아더월드... 잽싸게 아직 잠기지 않은 철창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경비가 자물쇠를 들고 다시 한번 안쪽을 향해 으름장을 놓기에 얼른 빠져나왔지만 역시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ㅋㅋㅋ 아무튼 웨스트민스터 구경도 달성!
플랫까지 걸어가긴 시간도 늦고 지쳤고 춥고 배고파서 세정거장정도의 거리지만 버스를 탔고, 내려서는 어김없이 헤매다가 겨우 찾아 들어갔다. 헤매는 동안 묵고 있는 플랫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물들에 호텔 간판이 걸려있는 신선한 풍경을 발견했다. 겉으로 보기엔 많아봐야 방이 다섯개를 안 넘을 거 같은데.. 안쪽은 더 넓을지도 모르겠다. 관광객이 많은지 대부분 NO VACANCY 팻말을 걸고 있었다. 사진 속 건물은 NO를 가려서 방 있음을 표시해뒀지만.
푸드트럭에서 샀던 바게트를 저녁으로 먹었다. 친구는 딱딱하게 굳은 바게트와 안에 든 소세지를 보더니 정말 영국놈들같은 메뉴라고 했다. 악명높은 영국음식의 첫인상은 소세지를 꽂아넣은 바게트가 되었다. 뭐... 먹을만 했다. 짜고 달큰하고 딱딱하고 뭐... 생각도 못했는데 친구와 친구 동생이 뎁혀주고 예쁘게 데코해줘서 살아난 것 같다.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돌아오는 길에 봤던 별이 총총한 런던 밤하늘로 첫날 포스팅 마무리! 를 하고 싶었는데 사진에 별이 1도 안 찍혔다 ㅠㅠㅠㅠ
아무튼 런던 하늘은 육안으로도 별이 남부럽지않게 보였다. 기분이 좋다.
15.03.09 00:09 작성
16.01.03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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