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Z
201504-2425 후지요시다
서울소녀회
2015. 7. 31. 22:22
2015년 4월 24-25일 후지요시다
알람을 6시에 맞췄지만 5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씻고 옷입고 화장하고 짐싸고 편의점에서 아침을 사와서 먹었다. 호텔에서 도쿄역야에스미나미구치까지는 구글 맵 상으로 20분, 내 걸음+도쿄역에서 약간 해맴+신호등 대기를 합쳐 30분이 좀 안 되게 걸렸다. 온통 새까만 양복을 입은 니혼바시 샐러리맨들 사이를 걸어가는 건 맘이 좀 간지러웠다. JR버스는 콘센트까지 갖춘 신식버스였다. 바움쿠헨을 먹고 트윗을 좀 하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논밭이 보이고.. 곧 후지산이 보였다. 중턱에 작은 구름이 걸려있었다. 날씨예보가 썩 좋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말 기뻤다. 몇분 안 돼서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가 가까워지면 귀신같이 일어나게 되는건 일본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0분 정차였기 때문에 사진 몇장 찍고 화장실을 후다닥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훼미마 간판이 있길래 들어가려 했지만 한번에 딱 보이지 않아서 포기했다.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진다. 고텐바, 후지산고교를 지나 후지큐하이랜드로. 버스에서 내릴 때 티켓 두장 중 한장을 내야하는데 그걸 몰라서 허겁지겁 찾아야했다. 뭘 줘야하는지도 몰라서 허둥지둥.. 부끄럽다.. 날씨가 완전 쨍쨍했다.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지만 보통열차 시간을 맞춰야 해서 적당히 찍고 이동. 금방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후지큐를 가로질러 갈 때 얘기고 입장하지 않으면 빙빙 둘러서 가야했다. 방향을 모르니 더 헤맨것도 같다. 이리 묻고 저리 묻다 결국 트렁크를 끌고 뛸 수 밖에 없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인가..... 했지만 다행히 얼마 안 뛰고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작년에는 JR 패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한번도 카치카치 티켓을 끊어본 적이 없어 시간이 걸릴까 걱정했는데 스이카터치기계가 보란듯이 있었다. 내내 스이카를 썼는데 한번쯤 똑딱이 티켓을 사볼 걸 그랬다.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걸.
애기들이 환장하는 토마스 열차를 타고 시모요시다로 향한다. 중간에 후지산역에서 잠시 정차하는데, 작년에는 그 자리에서 구름에 온통 덮여있던 후지산이 이번에는 선명히 보였다. 드디어.
봄이 늦게 머무르는 고장에 당도했다.
조용하게 웅크린 마을.
후지산도 당당하고, 벚꽃도 은근하게 남아있다.
햇살이 눈이 부시다. 구글맵에 의지해서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후기에서 읽었던 친절한 안주인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도 얼리체크인은 안된다기에 작은 핸드백으로 짐을 옮겨담고 캐리어를 맡겼다. 짐정리하는 도중에 집주인과 친분이 있는 동네 주민 할저씨의 방문이 있었다. 몇마디 얘기를 하다가 사실 이번 방문이 두번째라고 하면서 시무라상 얘기를 꺼냈는데 모르는 눈치였다. 이 동네 아이돌적인 존재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연령대를 잘못 골랐나 싶기도 하다. 3-40대였으면 아는 사람이 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연령대는 그 시각 모두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스호스텔 주인아저씨가 50년전 자신의 고교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말한 こうちょう가 뭔질 몰라서.. 지금 키보드에서 변환해보니 교장이구나.. 교장선생님이셨구나.... 아무튼 그랬다. 요시다 사람이라고 해서 시무라상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ㅋㅋㅋ
시모요시다 한복판에 숙소를 잡으니 걸어다니기가 편해서 아주 좋았다. 미우라우동도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완전히 여름같은 날씨라 티셔츠에 봄코트만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누가봐도 도회지 사람임. 근데 작년에 비해 신기하게 보는 눈초리가 적어서 어라? 싶었더니 아니나다를까 동네에 외국인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봄벚꽃을 보러, 후지산을 보러 놀러온 사람들이었다. 1년 사이에 이렇게도 분위기가 변하는구나. 남의 시선을 무지무지 신경쓰는 나로서는 다니기가 수월해져 고마웠다.
미우라우동에 당당히 입성했다. 작년엔 영업시간대를 놓쳐 돌아서야 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았다. 무슨 우동을 먹을까 고민하다 카타요세상이 먹었던 츠키미를 먹었다. 거기 있는 우동을 다 합쳐 요시다우동이라고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 점원이 친절하게 시치미와 카라미가 있는 장을 추천해줬지만 난 고추를 못 먹는 몸이라.. 덴뿌라를 넣어서 열심히 먹었다. 우동 면이 단단하고 쫄깃해서 많이 씹어야 했다. 시무라상 턱이 발달한게 그래서..?!(아님) 그래서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후루룩 후루룩 엄청 빨리 먹었다. 과연 이것이 내공의 차이인가보다. 시무라상이 이 우동집을 추천했다고 하는, 사후의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시무라상을 추억한다기보다는 미우라 상점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하다 걸려든 것 같았으나 그 기사 덕분에 이 가게의 이름이 한국에까지 알려졌음을 알지 모르겠다. 다음에는 시라스 우동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
루트를 고민하다가 일단 성묘를 한 후 충령탑을 보고 호스텔로 돌아와 한약을 먹기로 했다. 산보맵의 미우라우동에서 시작하는 코스대로 움직이려 했으나 쓰리지가 잘 안 터져서 안 보고 기억에 의지해 걸었더니 좀 헤맨 거 같다. 소학교도 보고, 그 옆 작은 신사에도 들어가 소원도 빌었다. 작은 놀이터가 딸린 미즈호 공원도 지나쳤다.
성묘를 하러 다다른 절 초입에 아직 다 지지 않은 벚꽃잎이 우수수 흩날리고 있었다. 절은 일부 보수공사중이었다. 올해야말로 꽃을 바치고 싶어서 염치불구하고 종을 울려 관리인을 불렀다. 꽃을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음- 망설이며 もうあがってると思うよ。라고 말하더니 시무라상? 하고 직구를 날렸다. 얻어맞은 직구에 깜짝 놀라 얼결에 ㅎ,하이! 해버리곤 아가루의 뜻을 알 수가 없어 외국인임을 밝히며 무슨 말인지 물어봤다. 중국인? 대만인? 물어보셨으나 다 틀리셨다. 내가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 아닌 건 알고 있다... 아무튼 이미 꽃이 바쳐져 있는 걸 아가루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꽃을 놓고싶지? 하고 멀리서 왔는데 딱하다는 듯 좋은 건 아니지만 절의 꽃이라도 좋다면 주겠다고 하셨다! 너무 감사했다. 아마 이 주변엔 꽃집이 가까이 없는 모양이다. 고마움에 손을 비비며 기다리고 있었더니 여러 색이 섞인 들국화를 가져다주셨다. 방법을 잘 모를것까지 배려해주셔서 수도까지 데려가주곤 물통에 물을 담아, 묘에 꽃을 꽂고 물을 뿌리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다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골목길만은 잊을 수가 없다. 있을법한 언저리에서 콜라가 가장 많은 곳이 시무라상이 있는 곳이다. 콜라와 커피, 한가득 꽃이 꽂혀있었다. 낑낑거리며 내 꽃을 꽂아야 할만큼 가득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편지를 내려놓고 향에 불을 붙이려는데 가져갔던 라이터가 담뱃불 붙이는데만 최적인건지 바람이 많이 부는건지, 금방 꺼져버렸다. 안전을 위한 조처인가 있는 힘껏 스위치를 눌러야 불이 켜지는 라이터라 오른손 왼손 할 것 없이 엄지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정말..정말 힘들었다. 간신히 연기가 나나 싶어 제단에 올려놓으면 몇분 안돼 꺼져버리고..ㅠㅠ 이곳의 향은 한개씩 붙여 모래 위에 꽂는 것이 아니고, 수십개쯤 되는 향을 다발로 묶어 한꺼번에 붙인 후 제단 위에 모로 눕혀놓는 형태이다. 결국 다시 절로 돌아가 불붙이는 기계로 향을 피워왔다. 작년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인생은 드라마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대로 분위기를 잡아주지도 않는다. 아, 시트콤일 수는 있겠다.
성묘를 마치고 그 길로 바로 충령탑에 올랐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작년과는 달리 벚꽃이 흔적만 남아있었다. 일주일이나 늦게 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요거라도 남아 있어줘서 오히려 기뻤다. 충령탑 근처에 낯선 안내판이 있었다. 오른편의 작은 언덕길에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의 지도가 있었다. (도쿄타워에서 이 방향엔 오다이바, 롯폰기힐즈 같은 게 있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다시 보니 심지어 간이 화장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작년 가을쯤 설치된 모양이다. 관광지인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보니 또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탁 트인 요시다 전경과 후지산은 위풍당당하다. 조금 앉아있다가 내려왔다. 이번 여행에선 요시다의 야경도 보고 싶으니 한번 더 올라올 생각이다.
날씨가 점점 흐려진다. 그 쨍쨍한 햇살은 어디가고 슬슬 바람이 분다. 호스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한약을 먹으려다 실패했다. (도쿄 호텔 냉장고에 두고 왔다ㅎ) 방 창문을 열면 후지산이 바로 보였다. 전자렌지와 냉장고, 부엌, 목욕탕 등 안내를 받았다. 물은 그냥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 하길래 마셔봤더니 꿀맛이었다. 후지산에서 길어오는 물이라고 한다. 20년 전에 내린 후지산의 눈이 녹은 물이라고 한다. 아아 힐링된다... 호스텔을 나와 바로 옆 블록에 있는 카페 월광에 들러 잠시 쉰 뒤 레트로거리를 구경했다.
카페 겟코. 왜 진작 못 와봤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평일 오후다보니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앉아서 주문해야 하는지 주문하고 앉아야하는지 몰라 물어보니 일단 앉으라며 커피로 할 거냐고 묻는다. 논카페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사과주스와 오렌지주스가 있대서, 그럼 오렌지 주스로. (사과도 못 먹는다 염증에 안 좋대서..) 잠깐 앉았다가 부산하게 일어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레트로라는 별명에 걸맞게 80년대의 인테리어를 갖춘 까페였다. 베이커리를 겸하는 듯 한켠에는 구움과자가, 쇼케이스에는 케잌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는 독립공방에서 파는 에코백, 동전지갑, 손수건 등을 팔고 있었다. 문간 근처 유스호스텔이나 라이브 전단 등이 배포중이었다. 테이블 아래 선반에는 브릿지 과월호와 음악잡지 부록으로 나온듯한 라디오헤드 특집이 놓여있었다. 부록이라고 해도 웬만한 잡지보다 두껍다. 부록이 아니라 별간일 수도. 아, 와이파이는 안 됐다. 충전 콘센트도 없다. 일본 까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둘러보며 치즈케잌을 함께 주문했다. 여성스러운 목소리의 제이팝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다가, 비슷한 목소리로 다만 가사가 영어인 곡으로 바뀌었다. 시디를 걸어놓은 것 같다. 캐스커나 라이너스의 담요같은 느낌. 보다는 좀 어른스러운가. 사실 여자 보컬 한국 인디를 정말 좁게 들어서.. 아무튼 너무너무 포근한 공간이었다. 아침부터 내내 걸어다녀 지친 다리도 쉴 수 있었다. 오렌지주스와 케잌치고 시간이 걸리길래 의아했는데 접시를 받아들고 알았다. 생크림에 작은 피스를 올려 딸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아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아오!! ㅠㅠㅠ 사진을 찍어서 엄마랑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SNS에도 자랑하고~ 신나게 자랑하며 온 몸과 마음을 릴랙스했다. 맛도 너무 좋았다. 도중에 지역 주민이 한명 와서 조각케잌을 테이크아웃해가는데, 단호박 케잌이 매진되어서 다른 걸 사갔다.
계산하면서 혹시나 싶어 옛날 여기서 배포했던 전단도 보관하냐고 물어보며 테쿠테쿠맙쁘..라고 하니 직원이 단번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선반에서 맵을 꺼내며 후지패브릭상의 팬데스까? 하며 팬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4월 벚꽃이 흐드러질때, 특히 지난주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고 말해줬다. 어디서 왔냐길래 (또 중국? 타이완?ㅋㅋㅋㅋ) 한국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무래도 대륙의 후지팬들이 쏠쏠히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한중일 평화의 전당이라도...
아이패드 주머니도 필요했고, 점점 많아지는 보조밧데리나 충전 코드들을 정리할 작은 주머니도 필요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빨간 케이스에 어울리는 배색으로 주머니와 긴 천을 샀다. 레몬 사브레도 하나 샀다. 후회없이 지르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미덕이다.
겟코지를 나와 아까보다 더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어떻게 루트를 짤까 머리를 굴리며 테쿠테쿠 맵을 보다보니 마이클의 유스호스텔 앞에 있다는 빨간 벤치가 눈에 띄었다. 멀지도 않으니 찾아가 볼까 싶어 구글맵 없이 테쿠테쿠맵에만 의존해봤다. 헤맸다. 그래도 어떻게든 건물들 이름을 맞춰가며 걷는데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동양 여행객이 마침 마이클네 유스호스텔을 찾는다며 길을 물어봤다. 지도를 들고 있으니 마찬가지 여행객으로 알아본 것 같다. 이쪽이라고 길을 안내해주는데, 자기가 그쪽에 가봤는데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태 헤맨 결과 나야말로 이 길만이 마이클네로 가는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ㅋㅋㅋ 잠깐 기다려보라 하고 먼저 건물을 확인한 뒤 손짓해서 불렀다. 나보고 이제 어디로 갈거냐고 묻길래 말을 얼버무렸다. 나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걸..ㅠ.ㅠ 마이클네 빨간 벤치를 찾고 있다고 두세번 말했는데 이해를 못한 거 같았다. 한숨나오는 영어도 영어지만 일단 저 빨간 벤치라는 게 너무 얼토당토 않아서가 아니었을까..ㅋㅋㅋ 그리고 결국 빨간 벤치는 옛날에 철거된 듯 보이지 않았다. 여행자는 나와 동행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목적이 너무 다를 게 자명하기 때문에 마저 얼버무리고 자리를 떴다. 두유노 후지패브릭 한번 해볼걸 그랬지. (뻥) 겟코지역으로 간다고 말은 했지만, 뒤돌아 걸으며 생각하니 카미요시다 쪽으로도 한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있고.
나카조네를 지나 카네도리이를 보고 피자라와 세븐도 스쳐지난 뒤 시무라야오야도 봤다.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선거유세기간이라 여기저기 선거포스터가 붙어있고, 선거유세 차량이 연신 후보자의 이름과 인사를 반복하며 달렸다. 차창 밖으로 흰 장갑을 낀 손이 나와 휘적휘적 흔들렸다. 겟코지역으로 돌아가 전철로 시모요시다까지 이동해서 해가 지는 순간부터 충령탑에 오르기로 했다. 오후 6시가 되면 챠임이 울리는데, 여태까지는 후지패브릭의 노래로 만든 챠임만 들어봐서 평소의 챠임은 어떨지 궁금했다. 12시에도 울렸을텐데 뭘하고 있었는지 못 들었다. 아마 우동야에 있을때 울렸나보다.
겟코지 역에서 한시간에 한두대 정도 오는 보통열차를 기다리며 아까 호스텔에 들렀을때 옷을 더 껴입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카페 겟코에서 산 천으로 아이패드를 감싸보니 사이즈가 딱이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가 오후 5시 30분정도였나.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아라카르트를 들으며 다시 이츠모노 유카를 올랐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점점 작아지는 전경을 찍었다. 그때마다 뒤에서 따라오는 서양인 1인과 눈이 마주쳐서 민망했다. 이때 헬로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나중에 훨씬 큰 뻘쭘함은 없었을것을.. 아무튼 열심히 오르고 올랐다. 아직 야경을 보기엔 조금 일렀다. 추위와 맞서 싸우며 ㅠ 조금씩 남색으로 짙어지는 요시다를 멍하니 지켜봤다. 나무 데크 때문에 의자에 앉으면 시야가 가려져서 선 채로 데크에 기댔다. 아까 본 외국인은 또 다른 일본 청년과 꿍짝이 맞아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좋은 스팟을 소개받고 있었다. 근데 스팟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기때문에 ㅋㅋ 내가 가려고 하는 스팟마다 그 콤비가 있어서 꼭 내가 따라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일부러 한군데서 많이 뭉개고 갔는데도 어김없이 다음 장소에 그 콤비가 있었다. 역시 아까 하이 헬로 하우두유두를 했어야했다. 치밀어오르는 어색함.. 날이 어두워지니 사람들도 슬슬 내려가고, 일본 청년도 내려가고, 아까부터 한자리에서 계속 타임랩스를 찍는 대학생(추정) 하나와 나만 남았다.
후지산과 요시다의 야경은 상상했던 것 만큼 아름다웠다. 다만 도시의 불빛과는 그 성질이 달라 아주 깜깜해지기 전, 수채화물감을 번지게 하는 것 같은 남색일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높은 빌딩의 비행기 유도등도 없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후지산의 만년설 부분만이 어슴프레하게 빛나는 완연한 밤이 되고 나면 문득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은 도시가 쓸쓸하다기보다.. 여기 서있는 내가 쓸쓸하다.
잊어버리지 않을 거다.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걸 위한 방문이다.
앞으로도 나아가는 후지패브릭을 지켜보면서 나도 같이 앞으로도 전진해야겠다고, 그리고 그걸 보여주겠다고.
당신 음악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슬픈 마음으로 생각을 끊어버리는 건 역시 볼 수 없게 된 미래때문이다.
타임랩스를 찍던 학생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좀 무서워져서 나도 곧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계속 이용했던 계단이 아니라 자동차가 올라오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이용했다. 이 길을 밝히는 동그란 주황색 등이 매번 궁금했다. 카메라가 별로 좋은 게 아니라 사진을 찍어도 그 느낌이 안 사는 게 아쉽다. 예쁘고 긴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M2에 들렀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메뉴는 다이콘 스파게티로 정해져있다. 메론소다를 함께 주문했다. 역시 맛있다. 메밀국수처럼 톡 쏘는 무향이 간장베이스 파스타 소스와 잘 어울린다. 새싹들이 아삭아삭 씹히는 것도 상쾌하다. 이번에도 계산하면서 츠마요지 기념품을 받았다. 받으면서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니 하나를 더 주셨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용 잉어가 걸려있었다.
돌아온 숙소 현관에서 어떤 서양인과 마주쳤는데 이제부터 후지산에 오를 거라고 했다. 낮동안에는 수면을 취했다고. 진짜 고져스하다. 굿럭이라고 말해줬나 안 해줬나 기억이 안 난다. 암튼 진짜 쩌는 이야기다. 하긴 후지산은 최소 여덟시간 이상 걸리는 강행군이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랐다 내려오려면 아무리 늦어도 새벽 두세시엔 나가야한다고 하니.. 나는 그런 육체적인 우월함을 좀 동경한다. 방은 후기에서 익히 말하듯 깔끔하고 아담했다. 이런 정갈한 숙소에 누추한 제가 들어와서 송구스러운 맘이 들 정도. 목욕탕도 공용이긴 하지만 '목욕중' 팻말을 걸어두고 문을 잠그면 다른 사람을 만날 일 없이 쓸 수 있었다. 드라이어는 왠지 모르겠지만 세탁기 위에 있어서 찾는 게 좀 힘들었다. 텔레비전으로 더빙된 라푼젤을 보며 머리를 말리고 짐을 정리하고 아이패드를 좀 만지작 거리다 내일 열차 시간을 살펴보고 잠이 들었다. 히터식 난방이라 좀 건조했다. 이불이 포근했다.
돌아오는 날은 스펙타클했다.
예정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 너머의 구름 걸린 후지산을 보고, 시무라상에게 한 번 더 가 어제 깜박한 아메스피 한 갑을 놓았다. 아침 일찍 누군가 다녀간듯 향이 놓여있었는데 바람때문에 불이 꺼져 거의 타지 않은 채 놓여있었다. 잘 보니 콜라캔도 새것이 하나 따여있었다. 어제 그렇게 절의 관리인에게 눈도장을 찍고 오늘 아침에 또 마주치면 뻘쭘할 거 같아서 오늘은 향을 생략하려 했었는데, 마침 이 타다 만 향을 다시 태우기로 했다. 한번 불이 붙었던 향이라 그런지 어제보다는 수월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중간에 두번 꺼져서 그때마다 다시 붙였지만. 불을 붙일때마다 엄지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 이 라이터 정말 다시는 안 쓴다.
어제만큼이나 더 두서없는 이야기를 건네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후지산이 구름에 덮여가고 있었다. 햇빛 찬란한 가운데 점차 모습을 감추더니 자리를 떠날 쯤엔 완전히 가려졌고 그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후지산의 모습이었다.
체크아웃 후 친절한 안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시모요시다 역으로 가는 중 신사에 들러 오미쿠지를 뽑았다. 5월 5일의 승마 축제에 주역이 될 말 몇 필과 기수 한명이 있었다. 아침부터 연습하는 모양이다. 시무라 테쿠테쿠맵에 있던 소학교 시절 놀이터가 아마 이곳일 것이다.
오미쿠지결과는 '승마'였다. 의아했지만 상세를 읽어보니 좋은 내용이라 기분이 좋았다. 시모요시다에서 아마도 하나뿐일 편의점 로손에서 물과 삼각김밥을 사고 전날 미리 봐둔 시모요시다발 보통열차 가와구치행을 타고 겟코우지를 지나 후지산역으로.
후지산역 큐스타에 무지루시가 입점해 있다길래 반가웠지만 아쉽게도 10시부터 개점이었다. 티라미수 키트는 이번에도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로손에서 진득하게 들여다볼 시간이 없어 삼각김밥만 샀던터라 더 먹을 것이 필요했지만 역 직원에게 물어보니 후지산역에는 편의점이 걸어서 10분 거리에나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거 아마 나카조네에 있는 세븐을 얘기한 거 같다. 모스버거에서 피스테미나 비프? 스태피로미 비프? 생소한 이름의 모스아사메뉴를 먹었는데 그냥 짭쪼름한 얇은 햄이었다. 맛있었다.
버스를 타고나서 생각해보니 시모요시다 역에서 열차를 탈 때 되게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서 전철 타듯 탄 느낌이라 뭔가 아쉬웠다. 지하철역은 맨날 가지만 시모요시다는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데.. 좀더 마을 풍경을 잘 보고 올걸. 아쉬워하며 흘러가는 차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와구치호 역을 경유하여 후지큐하이랜드를 찍고 달려가던 무렵 비석이 많은 곳을 지나가며 이 동네도 위패가 안치된 절이 많나보구나 했다. 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계단도 있고 탑도 있고.. 충령탑같은 게 일본에는 흔한가? 가 아니라 저거 충령탑인데! 방금 그건 시무라상이 있는 곳이고! 지금 달리는 중앙 고속도로가 성묘하러 갈 때 본 츄오도로구나!! 다시 시모요시다의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눈물이 났다. 몇번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좀더 보기 자랑스러울 모습으로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진짜로.. 다시 또 올 것이다. 무슨 내가 요시다를 떠나 상경하는 느낌이지만ㅋㅋㅋㅋ 감정의 타래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건설적인 걸 골라보자면 그랬다. 꿔준 적 없는 빚이지만 이젠 갚을수도 없는 빚을 껴안고 있는 팬이라면 알 그 마음이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자다가 운전수의 목소리에 깼다. 신주쿠, 사고, 정체. 뭐라는겨 시방... 서둘러 구글맵으로 교통정보를 확인하니 현위치는 미타카였고 신주쿠까지 한참 남았는데 그게 다 시뻘건 색이었다. 도쿄전역도로가 화창한 초록빛이구만 하필 이 버스가 쓰고 있는 도로만! 원래대로라면 10분에 주파할 거리를 한시간넘게 엉금엉금 기어왔다. 내가 내릴 시나가와에서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넥스가 15:50분으로 네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 버스의 종착지인 하네다공항에서 탑승시간이 임박한 사람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친구와 시나가와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이런데 너그러운 사람이라 다행히 개의치는 않아했지만.. 카톡으로 급히 연락했다. 웬만하면 우회하지 않을까 했지만 뭐 고속버스가 쓸 수 있게 허가받은 도로가 있고 어쩌구 (이상 친구의 말) 아무튼 고속버스는 정해진 루트만 달리며 중간에 사람을 내려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시내 도로로 빠져서 전차로 옮겨타면 한시간은 일찍 갈 거 같은데... 그 전에 이 도로를 빼면 다 그린인데 좀 우회할 수는 없는건가. 영국은 뭔 시내버스도 뻑하면 정류장 스킵하고 루트 바꿔 달리더만. 치솟는 짜증은 알거나 말거나 버스는 사고현장까지 거북이 걸음을 계속하더니 기껏 정체 구간을 빠져나오자 시내로 진입하였다.. 분노한다....
결국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십오분쯤 늦게 시나가와에 도착했다. 넥스 지정석을 발권하려 자동발매기로 시도해보다 실패해서 줄을 기다려 직원에게 발급받았다. 발급 중에 물어보니 자동발매기에서도 발권이 가능하다고 했다. 허무하다. 데니스로 옮겨가 밥을 먹었다. 대략 한시간 반정도 여유가 있어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 버스연착이나 전차연착 얘기도 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도카이도선에서 인명 사고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요시다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20분에 데니스를 나와 50분 차를 타러 시나가와역 플랫폼으로 향하는 도중 친구가 탄식했다. 설마했던 넥스 연착이다. 넥스는 신칸센이 아니라 일반 열차의 레일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도카이도선의 인명 사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설마 트윗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씨부렸던 때문인가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녜요 오빠 이런 형태가 아니라.. 돈벌어서 요시다에 별장을 사던가 아님 요시다에서 취직을 하거나 그런 의미였어요... 다행히 50분 차부터 연착이 아니라, 그 직전 열차인 20분 열차 또는 그 이전부터 연착이 시작됐던 듯 20분 열차가 43분에 들어온다는 안내가 있었다. 50분 열차 대신 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지정석은 50분 열차 것이었지만, 뭐 정 만석이면 입석으로 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역무원이 해줬다.(마치갓챴다~또 이에바 이인쟈나이데스까네.)
제3터미널을 이용하는만큼 공항이용료가 줄어 터미널 체크인에서 1060엔을 환불받았다. 근데 난 담에 1060엔 더 주고 그냥 2터미널 이용하고 싶다. 진짜 멀다. 복잡하다. 아니 그냥 하네다를 이용할 것이다. 이번에는 버스 연착이 있어 하네다였으면 솔직히 시간에 맞췄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전화위복이 된 면이 있으나.. 인천도 나리타도 고생스럽다.. 아무튼 이번 일을 교훈삼아 담에 요시다에서 하네다로 갈 일이 있으면 버스 시간에는 여유를 둘 것이다. 도착해서 처음 한약을 먹었던 로손에서 다시 한약을 먹고 (이번에는 직원이 시간 대중을 잘 못했는지 아주 뜨거워서 레알 커피처럼 먹었다) 면세점에서 족자봉이랑 포테토수프랑 로이스 초콜릿이랑 봄의충령탑 마그넷을 샀다. 그리고 또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비행기로... 로손에서 한약에 정신이 팔려 비행기 안에서 먹을 걸 사는 걸 깜빡해서 저녁식사가 늦어지게 됐다..
언제나처럼 변수도 있고 실수도 연발한 여행이지만 목표한 건 모두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또 라이브를 보고 싶다. 또 시무라상에게 1년 결산 보고를 하고 싶다. 다시 여행하고 싶다.
욕심만 자꾸 많아진다. 열심히 살아야지...
'트래블 Z'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후지요시다 여행기 (1) (0) | 2015.08.17 |
---|---|
2014년 후지요시다 여행기 (0) (0) | 2015.08.14 |
201504-23 도쿄 (0) | 2015.06.17 |
201504-22 도쿄 (0) | 2015.06.15 |
가마쿠라/에노시마 (2) | 2013.02.03 |
'트래블 Z'의 다른글
- 현재글201504-2425 후지요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