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 in the air/모험기

따끈따끈 데친 브로콜리 보고 온 감상

서울소녀회 2009. 4. 2. 00:06

오늘의 공연은 말 그대로 '브로콜리, 너마저!'의 느낌이었다. 또는 '잔인한 4월'이거나.
이래저래 밴드명이나 공연명을 참 잘 지었다.



내가 멤버였으면 끝나고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의 질이 나빴다는게 아니고, 공연에 성의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관객들의 호응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브로콜리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 속에 섞여, 적지만 분명히 공기 중에 떠다녔던 '아뿔싸'라는 분위기라면, 심약한 나는 분명 울었을 것 같다. 관객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더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악의없이 잔인해지자면,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계피를 다시 보컬에 세워라! 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지금의 브로콜리 너마저가 반드시 과거의 브로콜리 너마저와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든 밴드는 변하기 마련이고 변화에 따른 장단점이 생긴다.
계피가 떠나고 난 후의 브로콜리 너마저는 그들이 했던 말처럼, 실제로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가 빵을 인간압축공장으로 만들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된 데에는 좋은 곡과 더불어 좋은 목소리가 있었다. 만약 좋은 목소리가 없었다면 아무리 순수한 초심에 좋은 곡일지언정 지금처럼 인지도를 넓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담인데 친구 중 한사람은 인디밴드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가 '노래를 못 부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이 말엔 수많은 반박을 할 수 있지만, 좋은 곡과 더불어 가창력이 대중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예라고 생각한다) 이건 초심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이상적인 말이지만, 정말 죽을동 살동 연습해서 새로운 브로콜리를 만들수 밖에 없다고 본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지금의 4보컬 체제는 정말 산만하다. 계피 가입전의 브로콜리도 4보컬 체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보컬을 주로 담당하는 멤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부디 4보컬 체제가 과도기의 한 시도에 그쳤으면 한다.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놨는데, 그래도 공연을 다보고 나오는 순간 브로콜리의 다음 라이브가 어떨지 많이 기대됐다. 새로 들려준 신곡 두곡은 역시 엄청나게 좋은 곡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브로콜리도 록을 한다는 걸 보여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가 좋았다. 제목이 대학교 1학년 전공탐색과목 같아서 내 맘대로 전공기초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다. '보편적인 노래', '유자차'와 비슷한 노선을 달리는 '잔인한 4월'도 만만치 않게 좋은 곡이다. 하루빨리 컴퓨터를 서비스센터에 맡겨서 수리하길 바란다. 오늘 싱글이 나왔으면 짐속에 품고 떠날 수 있었는데..^_T
전체적인 사운드도 안정적이었다. 솔직히 막귀인데다가 한쪽으로 치우친 자리에서 들어서 뭐 소리가 들리니까 들리나보다 하긴 했어도, 암튼 내가 듣기론 밸런스가 좋았다. 감기걸린 보컬들의 음정불안때문에 덩달아 악기파트가 조금씩 틀리거나 약간씩 뭉개지기도 했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은 뭐...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소리였다. 옛날에 CD보단 라이브가 별로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별로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체 그런 말을 누가 한거야. 그리고 윤덕원 목소리 진짜진짜 좋다.


잊고 넘어갈뻔했는데 '앵콜요청금지'를 준비하지 않은 치밀한 준비성에 대해서는 관객의 심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보컬이 어려운 곡이니까 그럴수도 있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야) 생각한다. 그래도...난 입장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곡이 끝날때까지 철떡같이 앵콜은 '앵콜요청금지'겠거니 믿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아예 앵콜곡을 준비하지 않다니! 설마 추위속에서 1시간~2시간을 기다린 관객이 한시간의 공연에 만족하고 앵콜 없이 돌아가리라 생각한건가! 이런 말하긴 부끄럽지만, 상상 이상으로 순진한 모습을 보여줘서 사실 매력은 상승했다. 암튼 관객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급히 의논에 들어간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미 셋리스트에 있었던 '마침표'를 다시 연주해주었다. 아..청춘열차나 전공기초를 한번 더 해줬으면 더욱 기뻤을테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좋았다.

150명이 넘는 인원을 꾸역꾸역 집어넣느라 수고하신 빵의 준비성에도 박수... 담부턴 그냥 예매로 해주세요. 빠르게 포기하게. 관계자들도 설마 이렇게 브로콜리가 떴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하긴 나도 깜짝 놀랐다. 공연시간이 늦다고는 하지만 평일이고, 축구 A매치도 있고, 오아시스 내한일이고, 1시간이나 일찍 갔는데도 줄이 그렇게나 길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줄 선 위치 치고는 좋은 자리에서 봐서 별 불평은 없고 즐겁게 공연을 관람했지만 분명히 환불이 생각날 정도로 화가 난 관객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