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 in the air/모험기

LIQUIDROOM 5TH ANNIVERSARY

서울소녀회 2009. 10. 1. 00:53


9월 26일, 일본에 와서도 도쿄의 도심을 처음으로 가봤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전 일본에 관광 온게 아니라 생활을 하러 왔기 때문에 이바라키는 커녕 츠쿠바를 벗어난 일이 드물었어요. 어쩌다 벗어나게 되어도 도쿄 근처 다른 현에 가게 되고.. 뭐 그랬습니다.

일본의 라이브 클럽 리퀴드룸이 신주쿠에서 시부야로 이사한지 5년이 되었대요. Tokyo no.1 soul set 과 Bonobos, 그리고 오프닝 게스트로 Heavymanners가 출연했습니다. 최근 소울셋과 콜라보레이션 싱글을 발표한 Halicali (영어로 이렇게 쓰는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ハリカリ, 하리카리 입니다.)이 소울셋의 깜짝 게스트로 와줬고요.




이 동네는 프리드링크는 고사하고 한 잔씩은 무조건 사야해서 깜짝 놀랐지만 겉으론 쿨하게 내란 대로 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여긴 이상한 데서 느슨하고 이상한 데서 빠릿빠릿해요. 덕분에 100엔이 모자라서 소울셋 티셔츠를 못사고...아이고... 하지만 저는 여기 내년 3월까지 있습니다. 쓰고보니 얼마 안 남았네요 젠장... 암튼 그래서 티셔츠는 다음을 기약하고 대신 타올과 열쇠고리를 샀어요. 최근 9년 쓴 열쇠고리를 잃어버려서 크게 상심한 차였습니다. 이건 19년 써야지.




리퀴드룸에 대한 감상: 규모가 커요. 하긴 이사하면서 온전히 공연만을 위한 건물을 세웠을텐데 오죽하겠냐만은. 무대보다도 객석의 규모가 피부에 다가옵니다. 맨날 빵이나 쌤이나 드럭만 보다 300명은 들어찬거 같은 사람을 보니 부럽더라구요. 무대는 상상마당보다 좀 더 큰정도일까? 객석은 상상마당 2.5배쯤 되는듯 해요. 적어도 500명 이상 수용 가능하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휘시만즈 라이브 클립에서 봤던 그대로의 조명스타일과 무대였어요. 이사를 했어도 스테이지를 크게 바꾸지는 않았나봅니다. 오른쪽 뒷편에 치우쳐서 계단 한단 밟고 봤는데 제 키에 그만한 명당이 없더라구요. 사운드도 좋나 좋았음..... 그 위치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뭉개지지 않아!! 탁 트인거 같아! 좋을거란 기대를 하고 가서 더 좋게 들렸는지도 모르지만요.

관객의 반 정도는 남자였지만, 샤방한 언니들이 많았던 걸로 봐서 보노보 팬이 많이 왔나 봅니다. 사실 보노보는 휘시만즈 덕분에 이름만 자주 듣고 제대로 곡을 들은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밝고 따뜻하고 경쾌한 곡이 많았어요. 셋리스트 중간중간 피드백 입빠이 넣은 몽환적인 곡도 있었고요. 세번째였나 네번째 곡은 대놓고 나이트크루징과 유라메키 인디에어의 오마쥬인거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리고 보컬의 고음 처리가 사토 신지랑 똑같아서 되게 그리운 기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근데 자꾸 관객 반응을 유도하려고 해서 한쪽에서 짜식었음 ㅋ 곧 라이브 디비디가 나온다고 합니다. 라이브를 보고 한눈에 홀딱 반한건 아니지만 나중에 또 보고 싶어요.

아 순서는 헤비매너가 먼저인데... 시간 딱 맞춰서 5곡 폭풍연주하고 멘트 한마디 없이 들어갔습니다. 진짜 '안녕하세요 헤비매너입니다'라는 말도 없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없고 러닝타임 평균 7분짜리 곡 5개를 폭풍처럼! 하긴 처음부터 마이크조차 세팅이 안 되어있었으니 말하고 싶어도 못했겠군요... 제가 아는 밴드 내에서 표현해보자면 코코어의 사이키델릭에 윈디시티가 조금 얹힌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키보드의 역할이 커서, 곡 내내 전자음이 휘몰아쳤습니다. 완전 인지도 제로의 밴드인데도 집중하게 되더군요. 굳이 단점을 말해보라면 볼륨을 너무 세게 잡았다는거. 하긴 이건 미덕일수도.. 그리고 세 팀 중 유일하게 베이스가 번졌다는거. 괜히 트집을 잡아보라면 왠지 레코딩보다 라이브가 좋을거 같다는거?

그리고 소울셋 아오......이 몰아치는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뛰어난 라이브는 아니었습니다. 첫 곡부터 불안한 호흡을 자랑하는 비케에게 한번 놀라고 흘러간 세월을 증거하는 와타나베의 목소리에 두번 놀라고 처음 들어본 라이징선이 넘버원의 동어반복이라 세번 놀라고.... 집에 와서 웹 돌다가 헤이헤이스파이더에서의 퍼즈가 의도된 것이 아니라 가사를 까먹어서 생긴 침묵이란 걸 확인하고 네번 젠장!

근데 소울셋의 최근 라이브가 줄곧 이 수준은 아닌 듯 합니다. 다행이죠. 전 모든걸 세월의 탓으로 돌리고 '전성기가 지났으니 어쩔 수 없나...'라고 생각하며 아쉬워만 하고 있었거든요. 왜 나는 5년 일찍 태어나지 못했을까 늘 하던 원망도 하면서요. 2003년이었나 2004년의 EZO에서의 활동 재개 라이브는 진짜 죽여줬다는데.. 하지만 가장 최근 발표된 라이징선은 정말로 넘버원에 수록된 곡들과 똑같아서 걍 그랬어요. 확실히 전성기는 지난 모양입니다. 특히 비케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활동 재개 후의 음반에서 귀에 꽂히는 넘버들은 와타나베의 보컬이 주도하는 곡이지 비케가 주도하는 곡은 아니지 않았나요. 앞으로 Jr.같은 명반이 나오면 말춤을 추는거고 그렇지 못해도 그냥 오랜 팬으로서 부둥부둥하는 거고 그런거죠 뭐. 하지만 그래도 랩할때 나까지 불안하게 하진 말아줘.. 물론 한두번의 찰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만감이 교차하더군욬ㅋㅋㅋㅋ 

근데 좋나 좋았어요. 라이브의 객관적인 질이 어떻든 개인적으로는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왜냐면 전 리스너이기 이전에 충실한 팬이니까...^_^ bronco summer를 듣고 깜짝 놀라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그러다 일음 판매 사이트에도 들어가보고 죄다 5만원 6만원 하는데 그나마도 다 절판 크리라, 넘쳐나는 바이트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올린 두세곡으로 만족했던 8년 전이 떠오르네요... 일본 여행가는 친구한테 밴드 이름 적어주고 있는거 다 긁어와달라고 부탁했더니 구할 수 있었던 건 베스트 앨범 한장이었죠. 일본에서도 구할수없다니 이럴수가! 그래서 영원히 구하지 못할 음반이라 생각하고 베스트 앨범을 듣는 걸로 만족했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sunday에서 jive me revolver로 이어질 때 정말로 방안에서 말춤을 췄던 것도 돌이켜보니 좋은 기억이네요...

그리고 세월은 흘러 대학생이 되고 휘시만즈를 접한뒤 역시 넘쳐나는 바이트 사이에서 어렵사리 한곡 두곡 건져올리고 있는데.. 어라 나이트 크루징에 어디서 많이 듣던 랩이 흐르네? 이거 음질은 왜 이렇게 나쁘지? 그게 바로 8월의 현장에 수록된 night cruising+yard였습니다. 운명은 돌고 돌아 이렇게...따위는 됐고 암튼 되게 반가웠어요. 그리고 직접 오사카의 츠타야에 가서 jr.와 outset을 모셔왔습니다. 그게 2년 전. 쓰고보니 진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왔네요.

그리고 그런 밴드 라이브를 처음 본거에요. '그리운 멜로디'라면서 hey hey spider의 'いつでも探す、居場所を探す'로 시작하는 부분을 무반주로 읊는데 머리속에서 자동으로 전주의 휘파람이 재생되고......박자를 절든 가사를 씹어먹든 (당연히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암튼 진짜 좋았다구요. 제 기분 아시겠어요? 그리고는 마지막 곡으로 선데이가...선데이가!!! 댄스본능을 일으키는 선데이가!!


하리카리와 함께한 신곡 '오늘밤은 부기-백'에 대해선..하리카리 이쁘더군요. 안무 귀엽더군요. 옆에서 어설프게 따라하는 비케도 귀엽더군요. 근데 이게 코라보라고? 하리카리에 소울셋이 피쳐링한게 아니라? 노래 자체는 뭐 그냥...전 그 무대 보고 하리카리가 아이돌인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아닌가봐요. 게스트로 긴급 결정되었다는데 왠지 이 노래 안 했으면 앵콜 할수있었을거 같아서 음......꼭 긴급히 부를 필요는 없었을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 싱글 발표덕분에 악수회도 개최되었더라구요. 악수회의 개념이 생소한 저로서는 '와 신기하다 소울셋도 이런거 하네;;;'였기 때문에 그냥 왔습니다. 이 밴드 대체 인기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겠어요... 일본에서 악수회란 대체 어느 정도의 팬서비스인가요?



일본의 관객 매너에 대해서: 사진 절대 안찍음. (리퀴드룸 한정같지만) 공연장 내부 흡연 절대 없음. 뭣보다 금연하래서 한다는게 컬쳐쇼크. 관객과 관객 사이의 예의 거리는 반드시 확보. 앞으로 가고싶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음. 시간 없어서 앵콜 안 한다고 못 박으면 앵콜의 앵자도 안 꺼냄. 그래도 놀 애들은 잘 놀더라. 앵콜은 안 외치지만. 앵콜은 아마도 타소가레 98이었을거 같은데 못 들어서 피눈물...괜찮아 난 내년 3월까지 기회가 있다. 하지만 12월 29일 연말 공연은 가족사정으로 못 갈거 같음. ㅠㅠ 제가 아무리 막장이어도 가족이 더 중요한거 같아요 네... 어떻게 하는게 가장 좋을지 고민중이에요.


어휴 오랜만에 하고싶은 말 다 써가며 포스팅하니 기분이 다 상쾌하네요
책읽으러 가야지..


여담: 리퀴드룸 가는 길에 시부야도 잠시 들렀어요.
에비스에서 시부야로 가는 거리만큼은 눈에 제대로 새겨넣고 왔습니다.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