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시작도 끝도 오직 그것이 메시지인지 아닌지뿐이에요. 메시지라면 뭐든지 좋아요. 그런 결론을 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론이네요.
아직 집에 가지는 않을 거에요.
(웃음) 뭐든지 좋다...... 그래요?
그래요. 가사라는 건 어떤 것이라도 뭘 써도 괜찮지만, 사실은 아무거나 다 되지는 않아요. 거기에 리얼한 것, 진짜 심정이 들어있지 않으면 누구의 마음도 울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군요.
맞아요. 처음부터 제가 뮤지션이 된 계기라는 게, 저를 찼던 아이, 미처 채워지지 못한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든
먼 발치에서라도 들어주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거기서부터 가만히 작곡을 시작하고 연주하고 발표하고, 가능하면 확 떠서, 언젠가 뒤돌아보게 해주겠어, 그런 마음이었는데, 그런 마음은 정말로 리얼한 거니까, 세상에 대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긴 해도, 역시 그건
메시지성이 짙었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데에서 스타트라는 거군요.
네. 그래서, 거기서 제
고민은요, 가사 속 자신과 실제의 자신 사이에 거리가 있으면 그건 메시지가 아닌 걸까 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제가 리스너를 향해 너무나 외로워, 아니면 받아들여지고
싶어, 그런 메시지를 노래하고 싶어도 저 자신의 리얼한 일상이 말랑말랑한 신혼생활로 충만해 있고 돈도
많고… 그런 상태라면 일종의 모순이 생겨버리잖아요.
예? 시무라씨 신혼이에요?
아뇨, 예를 들어 그렇다는 거에요.
저는 그런 즐거움보다도 메시지의 리얼리티를 택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저다운 가사를
쓰기 위해 저는 결혼하지 않았고, 여자친구가 없다고도 할 수 있는 거죠. 밴드의 알맹이, 즉 가사에 담은 메시지가 상정하는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바꿔갔다고 할까……
까다롭네요……
확실히 까다롭지만, 제가 계속 외로운 건 그게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 즐거움을 가사를 위해 배제해버린 거죠. 혹시 제가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노래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면 역시 그건 저라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것, 리얼하게 느낀 것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저희들의 경우엔 완전 잘 나가는 것도 아니고, 예를 들어 그 ‘사랑해’가 저한테 리얼한 것이라고 해도,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외로운
채로 있기로 했어요. 평소의 스스로를 스스로의 가사에 싱크로시키는 잔혹한 짓을 하고 있죠. 가사의 세계에서 순직하는 거에요.
일상이나 평소 생활을, 아티스트로서의 리얼리티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거군요.
하지만 물론 그 반대도 있어요. 매일 하는 생각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곡이 되는 경우라던가.
반대라기보다는, 일반적으로는 그게 더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그렇군요……. 하지만
역시 저는 다소 무리나 노력을 해서라도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과 평소의 자신을 싱크로시키고 싶어요. 스스로의
언어를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거짓이 되지 않기 위해 자기자신을 갈고닦는 동시에 평상시의 자신도 드러내고
싶으니까 가사 표현도 진화시키고 싶어요. 다만, 그건 결코
‘남자로서 더욱 성장하고 싶다’뿐만은 아니라, 요즘 별볼일 없는 남자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건, 제 속에서
겨우 그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사로도 쓸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 전까지는 그런 별볼일없는 남자의 모습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아내지 못했다는 건가요?
그런 거 같아요. ……원래 저는 상냥하기만 한 남자의 노래는 도통
모르겠어서, 그런 변화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도
그럴게 거짓말이잖아요. 예를 들어 저속한 노래는 우아함을 알지 못하면 노래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상냥하기만 한 가사에는 상냥함보다도 얄팍함을 더 느껴버려요. 저는
저속한 노래가 만들고 싶어서 음악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든 로맨틱한 꿈을 꾸는 밤이 있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날도 있고, 시시한 날도 있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 요즘에는 그걸 그대로
가사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겨우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 그때부터 겨우 남자로서 꼴불견인 부분도
가사에 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나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노래해도 상관없다’는 거에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점점 알 수 있게 되면서겠죠.
그 전까지는 역시 많이 고민했거든요. 최초의 최초는 그냥 그 애가
알아주길 바라는 열정에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런 열정은 길게 지속되는 게 아니고, 그러던 사이에 할말도 없어져서, ‘이런 가사 예전에도 썼었는데, 어떡하지……’ 그런 상황이라…….
그런데 그 여자아이에게 차인 건 언제쯤이에요?
고교생활이 끝날 무렵이네요. 첫사랑이에요.
그때 벌써 음악을 하고 있었어요?
유니콘과 오쿠다 타미오씨의 카피를 하고 있었죠. 또 오리지널도 만들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카피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작곡도 시작해서. 근데
그 당시의 곡은 심각해요. 완전히 모방이랄까 당시 듣던 아티스트들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해넣은 느낌으로
곡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던 것들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라는 고민에 다다르는데요, 고민해봐도 뭘 노래해야 좋을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서, ‘뱃속에 벌레가
끓어올라 괴로워’라는 식으로 괴이함만 뽐내는 가사를 썼네요. ‘바닷속
상어의 얼굴이~’라던가. 하지만 이건 나한테 전혀 리얼한
게 아니고.
그건 확실히 아무에게도 리얼하지 않아요 (웃음)
그랬기 때문에 아무도 반응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방금 말한 실연을 당하고 지금으로 이어진 거죠. 만약
그때 ‘나한테는 아무런 리얼함도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음악을 그만두었을 것 같아요. 작가랄까, 메신저로서의 일은
불가능하다도 포기했을 거에요.
그 실연에서 태어난 곡이 ‘암적색석양’이라는 곡이고, 후지패브릭에서 발표했는데, 스스로의 행동을 그대로 가사로 새겨놓았다는 면에서는 이 곡 이상이 없어요. 제
인생에 있어서 이 곡 안에 담겨진 것 이상의 진심은 없어요.
다만, 그 ‘암적색석양’조차도 스트레이트하게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노래는 아니지요. 그렇게나 그 아이에 대한 진심이 리얼했다면 그래도 됐을텐데 시무라군에게는
그런 노래가 전혀 없어요.
저한테 ‘사랑해’나 ‘좋아해’같은 가사가 없는 이유는 저도 알고 있어요. 그건 제 머릿속에 선연한 자기객관화, ‘그런 말을 들어봤자!’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글쎄, 제가
그런 곡을 들었을 때의 감상이란 게, ‘햐~ 그래요? 사랑하는군요?’ 정도밖에 안 되는데, 가끔은 ‘어, 좋아한대서
어떡하라구요?’ ‘사랑한다고 해서 어떡하라구요?’ ‘그래서
그 사랑의 내용이란 게, 어떤 경험을 거쳐서 나타난 사랑인가요?’ 그런식으로
탐색해버려요.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그러면 사랑하면 되겠네! 다 충족됐다면 뭐하러 곡을 만드는거야?’같은 식이 되어버린다구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제가 스스로를 아직 일류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부분이기도 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노래하지 못하니까 일류라 되지 못한달까. 그렇잖아요. 노래할 수 있는 아티스트, 예를 들어 미스치루같은 아티스트는 역시 그만큼 자기한테 자신감을 갖고 있을거고, 여러가지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세상을 온통 하트마크로 만들어갈 자신이 있다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저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그런 자신감이 없으니까
‘사랑해’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지요. 쓸쓸한 일이지만.
지금 미스치루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예를 들어 그들의 ‘울림(히비키)’라는 곡. 그 곡은 사쿠라이씨가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는 일상에서 만들어진 곡인데요.
가령 그 리얼에 대해선……
역시 그릇이 크죠! 역시 그런 리얼함을 세상에 발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사쿠라이씨의 그릇이에요. 제가
같은 걸 노래해봤자 거짓말이 될 거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고, 저같은
인간이 ‘네가 좋아’라고 노래하는 시점에서 ‘네가 그 사랑에 대해 뭘 아냐’는 얘기가 될 거 같아서……
다만 자신의 생활을 그대로 노래로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리얼한 곡이 된다는 보장도 없죠. 오히려 후지패브릭의 곡은 그런 걸 전하려는 밴드는 아니지 않나요.
정말 그렇죠. 그러니까 그 점에 관해서는 아직 제 그릇이 작은 거란
생각인데요……
하지만, 리얼한지 아닌지의 문제라면,
예를 들어 ‘TAIFU’에 나오는 ‘닥치시게’ 라는 노랫말. 그런 노랫말이야말로 일상회화 레벨에서는 전혀 리얼하지
않잖아요.
그게 아니에요! 저한테는 리얼한 거에요. 학생시절에 자주 듣던 해피엔드나 마츠모토 타카시씨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즈음 읽었던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표현이나 문어체가 저한테는 뿌리깊게 인풋되어있기 때문에 ‘닥치시게’라는 것도 그것대로의 리얼인 거에요.
저는 고등학교의 도서실 역사상 틀림없이 가장 책을 많이 빌린 사람일 거에요. 하루 3권씩 매일같이 빌리는 생활이었으니까 그 도서실의 셀렉션에 받은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단지 시대가 약간 예전이었죠. 학교에 있었던 소설이니까.
추천도서나 주로 쇼와시대의 소설이었겠죠. 그럼 그때부터 이미 그 당시에도
쓰이지 않을 법한 어휘가 축적되어버린 거군요.
그렇겠지요. 신간 수서가 없는 도서관의 단어만 잔뜩(웃음) 그러니까 후지패브릭이 서정적이라던가 문학적이라던가 일컬어지는
건 아마 그 도서실 때문이에요.
요즘 밴드로서는 드물게 영어 표현이 거의 없는 것도 그때문일까요?
그렇죠. 다만 저는 언젠가는 세계로 나가고 싶어요. 그걸 위한 준비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직 영어로
노래하거나 전달하는 건 어렵다고 봐요. 가령 외국인이 ‘와타쉬노~’처럼 일본어로 노래하는 곡이 웃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아마
저희가 영어로 노래하더라도 그걸 해외에 냈을 때는 분명히 그렇게 들려버릴 거란 걸 알고 있고, 이왕
할거라면 영어로 생각해서 영어로 쓴다, 그 정도가 아니면 어려울 거라고 봐요.
또 사비만 영어로 하는 가사에도 전혀 흥미가 없고. 그렇잖아요, 정말로 뭔가를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갑자기 영어를 쓰는 건 불친절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저로서는 ‘자네 정말로 그런 걸 생각해서 노래하는 건가?’ ‘그런 영어 ‘가사처럼 생긴’ 걸
만들었더니 튀어나온 거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다만
저도 영어에 감정이나 리얼함이 담겨있다면 노래하지요. ‘헤헤이, 베이베’정도는 괜찮은 거 같아요. ‘베이베,
그 걸이…’정도는 가끔 생각하곤 하니까, 그
정도라면 리얼한 거죠. 예를 들어 ‘TAIFU’라면 ‘튀어올라 레디고로’라던가, 그런
가타가나화된 영어 느낌은 당연히 있을 법하죠. 조금 잘난척하는 느낌이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사용해요.
잘난척하는 느낌? 그렇다면 별로 성공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데요……
아, 그래요?(웃음) 다만 그런 점은 말이죠, 아마도 실패하기 때문에 저희들답다고 생각해요.
아뇨,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가타가나 영어를 개성으로 승화할 수 있었달까.
네. 잘난적하고 있지만 잘난척도 못해! 같은 거죠. 그건 정말이지 확신범적이랄까, 잘난척하려고 해도 멋쟁이들의 지점에는 도착하지 않는 점이야말로 저희들다운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인데 영어는 어느정도 할 수 있으세요.
전혀 못해요. 할 수 있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을 것 같아요.
……
죄송합니다……
확실히 ‘레디고’라는 단어를
봐도, ‘레이 디이이 고’라고 불러버림으로써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와는 가장 먼 표현이 되었네요. 예를 들어 ‘사각의 프레임’이라는 가사도, 멜로디라인의 음표 수에 충실하게 ‘프레에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음표 수와 가타가나화된 영어 문제는 심도깊은 문제지요. 하지만 ‘프레임’보다 ‘프레에임’ 쪽이 제 곡에는 딱이에요. 그런 자각은 갖고 있어요.
확실히 시무라군의 가사는 언어가 음표 수만큼밖에 쓰여있지 않아요. 그
이상으로 말을 우겨넣지는 않지요. 이를테면 쿠와바타 케이스케가 즐겨 쓰는 방법이 아니라, 굉장히 음표수에 충실한 가사랄까.
그렇네요. 하지만 그건 저희가 여러 타입의 사람들에게 친절해야만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봐요.
친절?
요새는 멜로디라인이나 음표수에 맞게 가사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뜬 아티스트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우타다 히카루씨의 ‘First Love’라던가. 보컬이 당김음을 쓰는 부분이 많아서 정형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퍼지(Fuzzy)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다들 따라부르게 되는 건 역시 우타다씨가 인기가 있기 때문이고, 그건 ‘몇번이나 반복해 들려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일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의 경우엔 아직 우타다씨만큼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않았으니까, 함께 노래부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친절해져야한다고 생각해서……
미스치루에 이어 힛키의 이름이 나왔는데요, 제이팝 연구도 자주 하고
있어요?
하고 있죠.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부분이
많아요. 신예들 중에서 뛰어난 팀은 범프오브치킨이에요. 저도
범프를 정말 좋아해서 자주 듣고 있는데요, 아무튼지간에 파격적이라, 굉장하다는
한마디로는 다 할 수 없어요. 동세대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센스가 있죠.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꽃의 이름’이라는 명곡이
있어요. 사비에서 ‘당신이 꽃이라면 (아나타가하나나라)’이라고 노래하는데요, 제일 들려주고 싶은 부분의 여덟글자의 모음이 전부 ‘아’인 부분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아행의 모음은 가장 명랑하게 울리니까, 사비로서도 최적이면서 관객에게도 전달되기 쉬운 발음이거든요. 그렇잖아요, 뭔가 멜로디를 흥얼거릴 때도 대체로 ‘라라라~’지 않습니까. 나나나라도 하하하라도 상관없지만 아무튼 아행이라는
점이 강력히 시사하는 바가 있어요. 게다가 이 곡은 ‘당신이(아나타가)’에서 ‘꽃(하나)’로 이동해갈때, 멜로디가 1옥타브씩 뛰어오르거든요. 악보에서 보면 순정률의 완전5도라고 하는 건데요, 이 두소절만도 이렇게나 테크니컬해요. 만약 이걸 의식하고 한 거라면 후지와라씨의 재능은 진짜 말도 안 되는 거에요.
A멜로디에서 B멜로디에 걸친 전조라던가, 그에
따라가는 주인공의 심리변화라던가도 퍼펙트해요. 게다가 그 잠겨있는 목소리가 플러스되면 정말이지 인기가
없을 수가 없어요! 싱글컷이 안 될 수가 없어! 그렇게 생각해요.
극찬이네요 (웃음)
네. 그리고 레미오로멘이요. 글쎄, 사비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에서 ‘싸락눈(코나유키)’이라구요? 알기
쉽게 만든다면 ‘안녕(사요나라)’나 ‘고마워(아리가또)’나, 좀더 인간적, 감정적이어도
괜찮을 곳인데 갑자기 날씨 얘기가 나온다는 거에요 (웃음) 완전히
허를 찌르는 가사라. 하지만 굉장히 절절해요. 이 곡도 명곡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고, 역시 재능이겠죠. 약간 알쏭달쏭하게해서 생각에
잠기게끔 하는 요소도 있고, 일본어표현에 있어서 시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곡이에요.
가령 옛날 가요곡, 마츠다 세이코씨 등의 시대에는 A멜로디 부분에서 주인공 여자가 어딘가의 남자와 만나고, B멜로디에서는
그에게 고백을 할까 말까……. 하지만 실패할지도 몰라…… 그런
흔들리는 심정을 노래하고, 사비에서 거절당하고, 클라이맥스
사비에서는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다던가, 그런 스토리텔링적인 것들이 당시 주류나 전통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인간이 늘어나면서, 요즘
작사에서는 더이상 그것만으로는 전부 담지 못하게 되었다고 봐요. 그런 다양성 중에서도 범프 오브 치킨과
레미오로멘은 인상적이에요.
그럼 이제 본인의 가사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그렇네요.(웃음)
초기부터 순서대로요. 1집앨범에는 ‘쫓아라
쫓아라(옷테케옷테케)’라는 곡이 있지요.
이건 진짜로 아까 말한 해피엔드, 마츠모토 타카시, 추천도서에서 받은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 시기 쯤의 곡이네요.
하지만 그 영향의 변주가 흥미로워요. 타이틀부터가 좀처럼 없는 어감이잖아요?
어- 이 곡을 만들었을 당시에는요,
카페 뮤직이라는 게 유행하고 있었는데, 저는 거기에 대해 엿이나 먹으라는 입장이었어요. 세련된 게 멋지다는 흐름에 맞서서 ‘카페가 뭐냐! 사나이라면 다방(킷사텐)이다!이라고, 고집스런 거부반응을 보여서요. ‘카페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따 위는 곡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방에서
고민에 몸부림치는 커플이 진짜 록이다!’라는 심정에서 이 곡을 쓴 것이죠. 이 곡에서 묘사하는 다방은 그런 반발심에서 온 거에요. ‘카페라떼가
다 뭐냐! 아이스커피는 다방의 냉커피(레이코-)가 최고지!’같은 (웃음)
‘냉커피’라는 표현도 요즘은
잘 안 써요. (웃음)
하지만 그런,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점이 제가 일반적인 남녀와는 조금
다르게 모난 부분이랄까,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반발심리에서 아마 가능한한 촌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떤 것 같은데요, 우선 처음에는 사비에 ‘옷페케’라는 어감의 인스피레이션이 있었어요. 하지만 ‘옷페케’라고
불러봤자 가사가 되지 않으니까, 그럼 뭐 ‘쫓아라(옷테케)’겠군. 그리고나서
‘쫓아간다? 무엇을 쫓아가지? 아냐, 딱히 돈을 쫓아갈리가 없고,
뭐, 여자겠지.’라고 자문자답을 하면서 그 가사가
완성되었던 거에요.
그런 식의 자문자답에 문학에서 받은 영향이 스며들어 그렇게 된 거군요.
요새는 거꾸로 문학적인 느낌에서 빠져나오려는 실험을 하는 시기이기도 한데요, 확실히
당시에는 그런 가사가 많았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CD를
사주는 사람들이 가사를 읽고 ‘얘 머리 나쁘다’고 생각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해변가에서 갸루가 들을법한 ‘해피해서
짱이야, 우리들’이나 ‘낳아줘서
고마워’나 ‘평생 곁에 있어주길 바래’같은 가사…… 뭐, 분명히
그런 가사를 가진 노래 중에도 좋은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너그럽지 않고, 좀더 여기에 있는 평범한 청년들의 대표로서 노래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었고요.
그런 작사 스타일도 2집인 ‘FAB FOX’ 쯤에는 그 폭이 더욱 넓어지지요. 사비가 ‘노케-! 노케-!’ 로
시작하는 ‘모노노케하카란다’처럼 단어 본래의 뜻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난 표현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그 즈음은 의미라는 것에 대해 딱히 흥미가 없었던 시기에요. 단어의
무게에서 도망쳐서 보다 음악적이 되고 싶다는 게 있어서, 발음이나 어감을 중시하는 가사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모노노케하카란다’도 ‘쫓아라 쫓아라’에서처럼
자문자답을 매개로 해서 ‘노케-! 노케-!’ 라는 사비의 어감을 시작으로 ‘무엇을 피하는 거지? 물체를 피한다? 물체(모노)를 피해(노케)? 모노노케(원령)이라고 하면 어떨까? 정령이나
너구리유령같은 건 너무 평범하니까, 자기 자신이 노케노케라고 외치며 폭주하는 편이 좋겠다. 이왕이면 자기가 노케노케해버리자!라는 생각에 이른 거에요. 머리를 회전시키다가 그 방향으로 굴러가버린거죠. 곡 전개도 프로그레시브이고, 결정적인 부분(キメ)도 많고, 곡의 그런 특성에서 영감을 얻은 부분도 크지만요.
음악을 굉장히 중시하면서, 그런 한편으로 언어도 잘 전달되게끔 했군요. 정말 멋지게 완성된
곡이라고 생각해요.
곡을 구상하는 측면에서는 데드 레이스같은
느낌이었어요.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고 리듬도 4분의 4박자라 반복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 있어서, 예를 들자면 끝나지 않는
죽음의 레이스, 그런 이미지. 하지만 평범한 레이스 노래는
재미가 없으니까 거기서 다시, ‘록이니까…… 자동차만의 노래는
아닐거야…… 오히려 록의 데드 레이스겠지!’라는 이미지 연쇄작용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그 자리에 모노노케가 등장해서, 그들이
데드 레이스를 펼쳤어요.
그도 그럴게 이 곡, 처음에는 자동차랄까, 바이크의 곡이었으니까요 카와사키의 바이크가
등장하는 곡이었어요. 혼다가 아니라 카와사키. ‘ZII 멋쟁이네!’ 그런 느낌.
네? 시무라씨 바이크 타요?
저, 카브에요.
카브?! 그럼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이 아니네요 (웃음)
그렇다니까요 (웃음) 그게
중요해요! 그게 후지패브릭 퀄리티랄까. ……다만 ‘FAB FOX’ 즈음은 완전히 샛길로 빠져
있던 시기에요. 여러가지를 하려고 발버둥치는 느낌.
하지만 그것도 도전 가운데 하나였던 거지요.
네. 그게
없었으면 지금의 저희들도 없었을테니까요. 그 작품을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일단 여러가지를 해보려는 시기였던 것 같고, 하면서 재미있었고, 가사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사이키델릭이나 프로그레시브한 작풍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왕년의 프로그레시브 뮤지션 중에는 마약에
손을 뻗는 사람도 많았잖아요. 거기서 영상적인 면이강한 앨범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보는데요, 저희들은 그런 거 없이 머릿속에 또아리를 튼 수수께끼를 구체화하려고, 솔직히
말해 온통 기를 써가면서 후지패브릭류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워져갔던 거죠.
프로그레시브라면 ‘지평선을 넘어서’지요. 그런
복잡한 전개를 가진 곡의 작사는 어떤 작업을 거치나요?
역시 어려운 작업이죠. 멜로디가 완전히 먼저고, 거기에 조금조금씩 단어를 끼워맞추는 느낌이에요.
다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분명 형식적으로는 멜로디가 먼저 나오지만, 동시에
그 멜로디라는 게 ‘이 가사가 붙기 위해 태어난 것’같은
감각도 있고.
멜로디 그 자체에 수반되는 감정과 단어가
반드시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중요한 건 처음에 노래하고 싶었던 그대로, 메시지가 그대로 담긴 멜로디라고 생각하니까, 사실은 가사가 먼저이기도 하다는 사고방식도 생기는 것 같아요. 곡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뭔가 전하고 싶은 것이 있을테니, 그걸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나중인 듯 해도 그렇지
않다고. 그러니까 무엇이 먼저라기보다는 동시인 거죠. 실제
작업면에서 가사를 쓰는게 ‘더 늦을 뿐’이고, 사실은 함께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까지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요.
쌓아놓은 곡 한편으로, 쌓아놓은 가사가 있어요?
물론 있지요. 제 가방은 거북이 등딱지냐 싶게 다들 바보취급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데요, 그
안에는 항상 간단한 녹음장비랑 가사메모장이랑 파일이 전부 들어있거든요. 저는 생각난 건 전부 보존해두고싶은
타입이라, 문장은 물론 명사 하나라도 기록해둬요. 그 외에도
곡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그림같은 것을 그려두기도 해요.
그럼 기본적으로 작사는 손글씨로 하겠군요.
컴퓨터도 사용하지만요. 다만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쓰고 있는 샤프를 갖고 있는데요, 당시에
제 책상에서 떨어진 걸 좋아했던 애가 주워준 거라, 그걸 쓰면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징크스가 있어서
중요한 곡은 꼭 그걸 사용해요!
네(웃음)
그러니까 제가 가사를 쓰는 방법은, 먼저 곡이 나오고, 멜로디에 가이드가사를 입히고, 방금 말했던 것처럼 그 멜로디가 무엇을 노래하려 했던 건지 테마를 모색하기 시작해서, 음~ 뭔가 더 넣고 싶다 싶을 때는, 소재 수첩으로 돌아가보면 아, 이 곡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
이때 이거였겠지! 그런 라인을 발견하게 돼요. 그게 기분
좋게 딱 들어맞으면 그 다음은 이야기가 빠르죠. 이미 완성이 눈앞에 보이는 거에요.
2007년 ‘Surfer King’이후에는 다소 정도에서
벗어난 작풍이랄까, 또다시 새로운 모드에 돌입했죠.
그렇네요.
2집 앨범의 조금 무리해서 애를 쓰던 남성상이 무너지기 시작해서, 오늘 처음 말했던 것처럼
한심한 이야기라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있거나, 그저
술독에 빠지는 날이 있거나 하는 망가진 부분도 가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죠. 스무살을 넘기면서 겪은
여러가지 경험 덕에 그런 곡들을 꾸밈없이 부를 수 있게 되었어요. 머리로 생각해서 애를 쓰기 전에, 이걸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될 멜로디나 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방향으로 변했네요.
볼품없는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게 되니, 바보같은 곡을 부르는 것도 리얼해졌다는 이야기겠군요.
그렇죠. 글쎄
좀처럼 없을 거라구요. ‘메메메메메리켄!’이라고 노래하는
게 그럴싸한 요새 아티스트는.
‘메리켄’도 또 보통은 떠오르지 않는 단어라 (웃음)
이런 말을 과연 작품으로 내버려도 괜찮을까
싶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메리켄’이 맞아요 (웃음)
‘메리켄’과는 대조적인 이과적 표현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TEENAGER’의 ‘페달’에서는 ‘내가 가는
방향과 수직이 되었어 / 점점 선이 흐려져 곡선이 되었어’, ‘B.O.I.P’에서도 ‘반원’이나 ‘12바퀴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고, 여전히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문과적
요소와 심상풍경을 수치적으로 잘라내는 이과적 요소가 공존하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아아~ ……과연
그렇네요. 그건 저도 미처 몰랐던 부분이에요. 오늘 들을
때까지 의식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역시 수치로 표현하면 애매함이 없는만큼, 다루는 방법에 따라 전하고 싶은 상황을 이미지화하기 편하잖아요. ‘페달을
밟는다’고 하기보다 ‘12바퀴반’ 쪽이 더 상세한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리얼리티가 있죠. 예를 들어 ‘그녀의 눈이’라고
하기보다 ‘외꺼풀의 여자가’라고 하는 편이 이미지가 팟 떠오르는
거랑 마찬가지라. ‘그녀의 그 눈은 외꺼풀인가, 아니면 쌍꺼풀인가. 외꺼풀이다. 외꺼풀이고 그렇게 귀엽지는 않지만, 무척 분위기가 있는 여자였다.’ 그런 느낌이죠.
응. 그래서
노래를 듣다보면 그런 디테일이 리얼해지면서 언어가 갑자기 찔러오는 순간이 있어요.
제 경우에는 책을 읽고있어도 영화를 보고
있어도 거리를 걷고 있어도, 무슨 일을 하고 있더라도 어떤 인풋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항상 ‘음악에 반영할 수 있는 힌트가 없을까, 연주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버리니까, 사소한 일상의 사건에서 그런 디테일을 살리는 가사가 나오기 쉬운지도 모르겠어요.
일상에 안테나를 뻗어둠으로써 어느샌가 그런
감각이 길러졌다는 거군요.
네. 역시
음악가는 단순히 음악만 하고 있으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그걸 겨우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예를 들어 만화를 읽고 있어도 ‘이
작품은 여기여기가 이런 전개고, 이런 묘사가 뛰어나고……’라고
분석하면서 그걸 음악에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에 빠지고요. 가령 오늘 취재도 이게 문자로 화해
원고가 되었을 때, ‘아, 이 발언을 다뤄줬구나’하고 알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사용되지 않은 발언이 뭐였는지도
알게되니까, 그렇다면 나는 ‘아, 그 부분은 필요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재되지 않았다는 건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거니까, 혹시 내 곡에도 그런 생각을 담은 가사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인터뷰어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 사고방식은 리스너에게도 공감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오늘의 경험을 음악에 녹여가는 것 같아요.
성실한 사람이네요.
근데 이건 작품에 한해서만이에요 (웃음) 그래서 음악을 하는 거에요.
다른 것에 성실했다면 다른 걸 했을테니까요.
그렇게 지금까지 세장의 앨범을 발표해왔는데요, 자신의 작풍이 얼만큼 완성되었나요? 혹시 후지패브릭을 들은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작풍을 피력한다면 어떤 말이 적당할까요?
음…… ‘단념하는
인간’이려나요. 후지패브릭은 여러 타입의 곡, 여러 타입의 가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부 단념하는데서 시작하거든요. ‘어차피
나같은 거’에서 시작해서, 곡 중간에는 여러가지 꿈을 꾸어보거나, 여러가지 경험을 쌓아가지만, 역시 마지막에는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되죠. 그런 점이 일관적이지 않을까요. 또는 ‘X까!’에서 시작하죠. 무언가의
안티에서 스타트해요. ‘어차피 나같은 거’와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라는, 단념의 이중구조입니다 (웃음)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구 및 자기분석으로
완성되는 스타일과 스타트 지점에 리얼한 감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완고한 자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오직
분석만으로도 근사한 가사가 나올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그것뿐은 아니잖아요. 음악이란 어쨌든 수학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코드를 쌓는 방법이나
음악의 스케일이나, 리듬의 박자수나, 그런건 어느정도 테크니컬하게
분석할 수 있지만, 하지만 가사의 경우에는 수학이나 공식이 아니죠.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은 알 수 없어요. 잘 만든 모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르겠지만 소름이 돋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 그런 경우가 무척 많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걸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또, 그 ‘뭔지
모르겠는’ 건 대체로 자기의 리얼한 기분이 모양을 바꾸어 문득 닥쳐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가사라는 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에요. 그
생각에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강한지 약한지. 그것뿐이에요. 실제로는 사랑노래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더라도, 자기가 얼만큼이나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는지. 그 마음이야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명곡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거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