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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패브릭 2

フジファブリック 2

Katayose Akito

2010年7月12日

08:53


후지패브릭은 사계반이라고 불리는 춘하추동을 테마로 한 싱글을 4장 내는 것이 결정,

메이저에서의 첫번째 앨범은 가을반과 겨울반 사이에 발매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때문에 2004년 초입부터 여름의 끝까지는 많은 시간을 그들과 스튜디오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싱글을 위해 시무라군이 준비해온 것이, 명곡 <아지랑이>였다. 

 

발라드로 하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진 곡이었는데, 이거야말로 울면서 춤추는 듯한,

폭주하는 센티멘탈리즘을, 그 견딜 수 없는 감각을 음반에 새기는데 어울리는 곡이라고 느낀 나는

이번에야말로 멤버들에게 있어, 나에게 있어 마음 깊숙히 납득할 수 있게 완성하겠다고 마음으로 맹세했다. 

 

너무나도 집중해있었던 것일까, 레코딩 중의 기억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아무튼 시무라군이 납득할 때까지, 내가 납득할 때까지 철야에 철야를 잇는 작업이 계속됐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집을 부렸던 건 아날로그 악기. 특히 키보드의 사운드였다. 

첫 싱글에서는 아날로그 피아노가 아니라 노드 일렉트로의 디지털피아노를 사용했는데,

후지패브릭의 음악에는 진짜 악기가 어울린다는 것을 한번의 레코딩으로 통감했다. 

 

이후, 다이짱은 그랜드 피아노, 삐-삐- 울리는 60년대의 콤보 오르간, 따뜻한 하몬드 오르간,

수상한 미니무그, 희귀한 악기 피아노르간, 이윽고는 믿고 쓰는 월리처, 펜더 로즈 등,

최근의 밴드에서는 좀처럼 사용하는 일이 없는 빈티지 명기를 잔뜩 쳐보게 된다. 

 

중반의 기타 솔로에서는 다들 고민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솔로로 하고 싶다는 건 모두가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우군이 아무리 있는 힘껏 감정을 담아 테크니컬하게 연주하여 훌륭한 테이크를 녹음해도,

그것이 곡 중간에 있으면 어떻게 해도 제대로 들려오지를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은'이라고 해도, 이 곡이 추구하는 것은 산타나처럼 이른바 '눈물의 솔로'는 아니었다. 

촌스러워지는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쿨하게, 하지만 서정적으로 눈물이 나게 하는 솔로가 베스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번뜩 아이디가 떠오른 나는 마스터로 남겼던 소우군의 기타 솔로를 전부 역회전해서 다시 듣고,

그것들을 이어 1개의 역회전 기타 솔로를 완성시켰다. 

그 순간 이거다! 라고 소름이 돋고 텐션이 올랐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솔로를 들은 소우군은 한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면서도 금세 '멋있다!'라며 웃음을 보이고,

그 다음날에는 '봐요, 카타요세씨!'라며 역회전 솔로를 그대로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직 약관 22세였던 그는 이 아지랑이 레코딩에서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서서히 확립하기 시작해

다가오는 앨범 레코딩을 향해 후지패브릭 안에서 해야하는 역할을 파악하기 시작한 듯이 생각됐다.


보컬 녹음도 잊혀지지 않는다.

후일 시무라군은 자신의 목소리에 고민을 품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완벽하다고 생각됐다.

사실 첫번째 앨범의 노래는 모두 훌륭하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특히 이 아지랑이는 최고였다. 보컬 녹음 때는 언제나 신경질적이 되는 시무라군을 위해, 나와 엔지니어 이외의

멤버·스탭은 밖에서 대기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 묵묵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손톱을 세우는 목소리에, 녹음하면서 몇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완성된 테이크를 시무라군에게 들려줄 때, 자신있게 '최고의 노래가 녹음됐다~!!'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하고 기쁜듯이 웃던 얼굴이 지금도 마음에 새겨져있다.


그 후 녹음을 담당해준 엔지니어 카와즈라군과 믹스다운을 한번 실험해봤지만,

나는 어떻게 해도 납득할 수 있는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으로 삼은 '부드러운 회오리'같은 사운드를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스케줄과 예산 초과를

스탭에게 사과하고, 프로듀서로서 아직 미숙했던 자신에게 힘을 빌려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엔지니어진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마스터를 가지고 나 혼자서 방문했던 것은 코넬리우스나 쿠루리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나 자신도 Great3나 솔로,

쇼콜라로 몇번이나 신세를 진 귀재, 다카야마 토오루씨의 당시 롯본기에 있던 스튜디오였다.


그때 <아지랑이>의 믹스다운 작업을 장시간 말없이 뒤에서 지켜본 것은 무척 큰 공부가 되었다. 

자신의 이상적인 사운드가 엔지니어적으로 어떻게 구축되어가는가, 어떤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가,

편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체감시켜주고, 나의 초보적인 의문이나 질문에도 끈기있게

답해준 다카야마군에게는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 후 다카야마군은 앨범 <TEENAGER>, 신작 <MUSIC>등을 맡아 후지패브릭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엔지니어 중 한 사람이 된다)

 

노스탤직한 가사와 연계한 소박하고 퓨어한 멜로디를 중심에 두면서, 그것을 리버브나 딜레이를 구사한,

어떤 의미에서는 필 스펙터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 부드럽지만 화려한 '소리의 회오리'로 봉해 넣은 믹싱사운드는

내게 있어 이상이었던 폭주하는 센티멘탈리즘 그 자체로 생각됐다.

 

심야가 되어 멤버에게 완성본을 들려줄 때가 왔다.

나는 '어떠냐!'라는 기분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완성된 믹스를 들은 멤버들은

하나같이 침묵에 빠져버렸다.

작은 목소리로 '굉장하네요...'라고는 말하면서도, 전날밤에 녹음한 소리에서 상당한 진화를 거친 음상을

갑작스럽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침묵을 깬 것은 '멋지네요. 이걸로 갈게요!'라는, 뜻을 결심한 시무라군의 한마디였다.

그의 말에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을 즈음, 롯본기의 거리에는 이미 아침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커플링곡인 <NAGISA(바닷가)에서>를 포함해 이 싱글은 사계반 중에서도 상당히 강력한 싱글이었다고 생각한다.

빈티지 키보드의 사운드가 유효했던 초기 후지패브릭의 밴드사운드가 이 5인으로 확립되어가고 있었다.

 

<아지랑이>는 타이업이 붙은 것은 아니지만 전국의 FM이나 CS방송에서 많이 파워플레이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후지패브릭을 알린 계기가 된 1곡이 되어, 드디어 나도 조금은 어깨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 들었다.

 

아직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겨우 추구하는 사운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100%의 자신감을 가지고 납득할 수 있게 완성시켰다는 것이 기뻤다.


계속


フジファブリック「陽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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