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ove in the air/Fujifabric - MGZ

(카타요세 아키토 블로그) 후지패브릭5

서울소녀회 2015. 2. 16. 12:00

https://www.facebook.com/notes/457434034279494/


후지패브릭 5

フジファブリック 5

Katayose Akito

2010年7月14日

08:03


앨범 <후지패브릭>의 레코딩을 무사히 예정대로 끝낼 수 있었고, 나머지 최후공정인 마스터링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마스터링이라는 작업은 CD에는 도저히 들어가지 않을 만큼 큰 정보량인 마스터테이프를 CD 용량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센스가 나쁜 마스터링 엔지니어에게 다 맡겨버리면 그때까지 신중히 만들어온 사운드가 전부 부질없어질 위험성마저 있는 중요한 작업이다. 

 

지금까지 Great 3의 앨범은 모두 미국의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가져가 작업했었다. 

물론 국내에도 몇명 좋아하는 엔지니어가 있고, 탁월한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명수도 있으나 나는 아무래도 마스터링이라는 작업만은 해외의 엔지니어가 만드는 사운드가 좋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구미의 음악만을 듣고 자라온 나의 태생에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침 그때, 신경쓰이는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한명 있었다. 

The Beatles로 유명한 영국의 Abby Road Studio에 소속된 Steve Rooke다. 

덧붙여 작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비틀즈의 리마스터반을 담당한 것도 그다. 

 

존 맥킨타이어로부터도 그의 소문을 듣고 있었고, 그가 담당한 사운드가 내 취향이기도 했다. 

그 스티브 알비니처럼 사운드에 고집을 부리는 엔지니어가 '만약 예산이 있다면

마스터링은 꼭 애비로드 스튜디오에 가서 작업하고 싶다'고 말한다고 들은 적도 있었다. 

 

갓 완성된 후지패브릭의 첫번째 앨범에 어울리는 마스터링의 사운드를 생각했을 때, 싱글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작업을 진행할지, 미국의 마스터링 엔지니어에 의한 상큼하고 화려하며 음압이 있는 록적인 사운드도 좋을지 고민했으나, 첫번째 앨범에 시무라군이 쓴 곡이 가진

섬세하고 어딘가 습한 공기감에는 런던의 공기, 그리고 스티브 루크의 사운드야말로 최적이지 않을까 하는 직감이 들었다. 

 

조사해보니 다행히도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EMI계열의 스튜디오였기에 EMI를 통해 예약할 수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마스터링이 되면 요금자체는 일본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지만, 항공비등의 경비가 더 들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 멤버 전원을 데려가는 것은 예산적으로도 신인 밴드에게는 도저히 무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시무라군과 마스터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그는 해외에서의 작업에 몹시 회의적이었다. '솔직히 해외로 간다고 좋은 게 나온다고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잘라 말했다. 그건 확실히 정론이었다.

 

나는 몇개의 CD를 들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스티브 루크가 맡았던 일 중에는 그 당시 시무라군이 마음에 들어하던 프란츠 퍼디난드의 첫 앨범이나, 데이빗 보위,

그리고 비틀즈의 Yellow Submaline Songtrack이나 Let It Be Naked, 또 존 레논의 솔로 작품의 리마스터반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실로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마스터링 엔지니어 중 한사람이었다.

그 사운드는 부드럽고 깊이가 있어서 아무리 격해도 귀가 아프지 않은데, 그러면서도 이것이 바로 ROCK이다, 라는 사운드였다.

 

그가 맡았던 사운드를 듣고 있는 사이에 시무라군의 마음 속에도 스티브 루크의 작업에 대해 흥미가 생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알았어요. 카타요세씨를 믿고 런던에 갈게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런던으로 가기에는 디렉터 이마무라군과 시무라군, 그리고 나, 3명이 예산의 한계였다.

시무라군 외의 멤버들에게 함께 런던에는 갈 수 없는 것을 전해야 했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첫번째 앨범의 완성 작업, 그것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에 참관하고 싶지 않은 뮤지션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전원이 축하하고 싶은 작업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내게서 설명을 들은 멤버들은 모두 어깨가 축 늘어져버려서는 쓸쓸해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시무라와 카타요세씨에게 맡길게요!' 라며,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보내주었다.

그 때의 멤버들의 관대한 마음에는 지금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모두에게 그런 기분까지 갖게 하면서 런던에 가는 것이다. 반드시 훌륭하게 완성지어 돌아가야 한다. 압박을 느끼면서 나는 가슴에 단단히 맹세했다.

 

레코딩 종료부터 마스터링 사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휴가를 얻은 나는 마스터링 전에 쇼콜라와 런던으로 먼저 가서 자비로 단기체재하기로 했다. 물론 휴가도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현지에 먼저 도착하여 시차적응도 하고, 만전의 상태로 귀를 정비한 뒤 중요한 마스터링에 도전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시무라군과 이마무라군은 마스터링 전날 런던에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런던에 오는 것은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95년 가을, Great 3의 싱글 <DISCOMAN>을 레코딩하기 위해 멤버 전원이서 Townhouse Studio를 방문했었다.

거의 10년만의 런던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작지만 안정감있는 호텔을 고르고, 거기에 시무라군 일행도 합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스터링 전날 오후, 약속시간에 호텔 창에서 런던의 길모퉁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언제나처럼 커다랗고 까만 백팩을 짊어진 시무라군이 졸린 얼굴로 트렁크를 끌면서 나타났다.

'아, 카타요세씨! 뭔가, 런던... 실감이 안 나네요' 라고, 뭐, 언제나의 느낌 그대로.

일단 그 날은 같이 식사를 하고 천천히 쉬게 한 다음, 작업은 다음날부터 스타트하게 됐다.

 

통상 일본의 마스터링은 앨범 1장분을 하루에 끝내버리지만 스티브 루크한테서는 1장의 앨범에 2일간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하지만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그 낯익은 비틀즈의 자켓과 같은 횡단보도 바로 앞에 있었다. 벽에는 팬들이 한 많은 낙서가 쓰여져 있어 지금도 다들 비틀즈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더니 시무라군이 '어라, Chris LOVE!라고 하는게 많네요.'라고 말하기에, 잘 보니까 그 대부분이 Coldplay의 크리스 마틴에게 보내는 팬의 낙서였던 것이 재미있었다. 확실히 젊은 세대에게는 전설의 애비로드도 비틀즈보다는 그들이 사용하는 스튜디오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 스튜디오에서 전설적인 앨범이 셀수없을만큼 많이 태어난 거네요...'시무라군이 작게 중얼거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만 스튜디오 안을 관광객 기분으로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첫날이니까 그럴 여유는 당연히 없다. 우리들은 재빠르게 접수를 끝내고 스티브 루크의 룸으로 향했다.

 

스티브 루크는 실로 스스럼없는, 정말이지 런던의 펍에서 맥주를 마실 듯한 중년의 아저씨였다. 어제는 여기서 폴 매카트니가 작업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가 잊어버리고 간 기타 피크를 우리들에게 주기도 했다.

시무라군은 내게 작은 목소리로 '그냥 보통 아저씨네요'라고 말하면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우리들은 스티브에게 왜 애비로드 스튜디오까지 왔는지, 그에게 어떤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당시 일본 씬은 한창 음압경쟁 중이라, 일단 레벨을 잔뜩 넣은 화려하고 큰 사운드의 CD를 다들 추구하고 있었다.

그런 한순간의 임팩트를 중시해서, 음악적이지 않고 지쳐버리는 CD 따위를 우리들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지패브릭은 그런 씬 속을 이 앨범으로 파고들어가야 했다.

 

스티브 루크가 그런 일본의 풍조와 대척점에 있는 엔지니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의 미학이 무너지지 않을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레벨을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후지패브릭>의 마스터테이프가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머신에 세트되고 마침내 작업이 시작되었다.

 

'좋네요! 아, 지금 기타 소리, 비틀즈같은 사운드로 들려요!'

시무라군은 자기가 만든 소리가 영국인의 손에서 생생하게 약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텐션도 올라왔는지, 매우 기쁜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티브도 시무라군의 곡에 '이 곡 굉장히 좋네.'라던가 '이건 일본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발매 안 할거야?'라던가, 1곡 작업이 끝날 때마다 한마디씩 감상을 섞으면서 기분좋게 작업을 계속해주었다.

 

애비로드까지 온 것은 내 안에서 큰 도박이었으나, 그의 수완은 실로 훌륭했다.

결코 화려한 사운드는 아니지만 부드럽게 넘실대며 몇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따듯한 사운드.

그리고 레벨도 충분히 들어가서 조금 볼륨을 높이면 한층 좋은 느낌으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음 전체가 한꺼풀 벗겨지는 것처럼, 악기의 음색도 우리들이 스튜디오에서 들었던 소리 그대로에 가까워져갔다.

 

스튜디오의 모니터 스피커 중 하나가 언제나 카와즈라군이 레코딩으로 애용했던 것과 같은 YAMAHA 10M이라는 일본에서도 익숙한 스피커였던 것도 있어서, 시무라군의 귀에는 스티브의 수완이 어느 정도인지 금세 이해됐던 것 같았다.

'이 스피커에서 이런 사운드를 낼 수 있군요. 오길 잘했어요!'

 

아직 일본에 남아있는 멤버들에게 완성작을 들려주고 오케이를 받을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으나 여기까지 온 것은 틀리지 않은 듯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나아가, 결국 첫날로 마스터링 작업을 거의 끝내버린 덕분에 다음날은 사운드를 재확인하고 곡간의 길이를 결정하는 작업뿐일 듯 했다.

겨우 보이기 시작한 골인 지점에 가슴을 쿵쾅이며, 우리들은 호텔에 돌아와 근처의 인디안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카레를 먹고 다음날을 대비하여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곡간 길이 결정도 아무런 문제 없이 알맞게 결정되어, 드디어 앨범 <후지패브릭>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그 순간의 사진이다.


完成の瞬間
(今村、スティーブ、志村、片寄)

(이마무라, 스티브, 시무라, 카타요세)


간신히 긴장의 끈이 느슨해진 나와 시무라군은 디렉터 이마무리군이 여러가지 제반 수속에 쫓기는 사이, 일이 끝날 때를 맞춰 합류한 쇼콜라와 세명이서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탐색하기로 했다.


Abbey Road前にて、志村くんとショコラ

(시무라군과 쇼콜라)


스튜디오에는 잘 꾸며진 중정이 있고 그 옆에는 식당이나 델리 가게도 있어, 뮤지션스러운 사람들이 따듯한 햇볕을 쪼이며 중정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물고 있었다.

'이런 거 좋네요~' 시무라군은 중정이 맘에 든 듯, 자신도 벤치에서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분명 애비로드에는 비틀즈가 그 대부분의 곡을 녹음한 스튜디오가 당시 그대로의 설비로

지금도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어슬렁어슬렁 찾고 있었더니, 돌연 '카타요세씨! 여기 아녜요?'라고 시무라군의 눈이 반짝였다. 방 이름을 보니 'Studio Two'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 스튜디오다.

그러나 문에는 '공사중, 출입금지'라고 종이가 붙어 있다.

 

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눈빛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슬며시 웃으며, 거리낄 것 없이 문 손잡이를 돌렸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 높고, 오랜시간 숙련가의 노력이 들어간, 마치 체육관으로도 쓸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스튜디오였다.

'비틀즈 앤솔로지의 DVD에도 몇번이나 나왔던 방이잖아요!!' 시무라군이 무의식 중에 목소리를 높였다.

 

콘트롤 룸은 중간 2층에 있었다. 비틀즈의 사진에서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이 여기서 아래에 악기를 든 네명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대로였다.

'이거 혹시 폴이 쳤던 피아노랑 같은 거 아닐까요' 시무라군이 그렇게 말하고 

오래된 피아노에 앉더니 뚜껑을 열고 피아노를 가볍게 연주했다.

 

마치 꿈같은 시간이었다. 언제까지라도 여기에 있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출입금지인 장소. 언제 누가 화를 낼지도 모르기에 우리들은 몇장 기념사진을 찍고 미련을 남기면서도 스튜디오를 뒤로 했다.


Abbey Road Studio 2に忍び込んだ志村くんと僕

(STUDIO TWO에서)

 

마침 수속을 끝낸 이마무라군이 우리들을 찾고 있었다.

우리들은 비틀즈의, 그 스튜디오에 잠입했던 걸 자랑해서 이마무라군을 분하게 했다.

돌아올 때 시무라군이 '멤버들을 위해 애비로드 굿즈를 선물로 사고싶어요'라고 말했다. 스튜디오의 매점에서 애비로드의 이름이 들어간 굿즈를 몇개 손에 넣고 우리들은 스튜디오를 뒤로 했다.


アビーロードがあるSt. Jone's Wood駅の売店前で。アビーロードがあるSt. Jone's Wood駅の売店前で。

(애비로드가 있는 St. Jone's Wood역의 매점 앞에서.)

 

돌아오는 길은 물론 당연히 애비로드 스튜디오 앞, 횡단보도에서의 기념촬영이다.

하지만 현장은 생각 이상으로 교통량이 많은 장소로 도저히 차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 비틀즈는 아침 아무도 없는 시간에 촬영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우리들은 몇번이나 몇번이나 비틀즈의 네명처럼 횡단보도를 건너 사진을 찍었다.

시무라군도 나도 완전히 어린아이로 돌아가, 큰 소리로 웃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アビーロードを横断する志村くん

(애비로드를 횡단하는 시무라군) 


그대로 우리들은 캠든이라고 하는, 도쿄로 치면 하라주쿠와 시모키타자와를 더해 2로 나눈 듯한 거리로 향했다. 도쿄에서 기다리는 멤버들의 선물을 더 찾기 위함이다.

캠든에는 이른바 록 샵(Rock Shop)이 많아, 시무라군은 일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레어한 밴드 티셔츠나 뱃지 등을 발견하고는 멤버들을 위해서라며 쓸어담았다.


カムデンまでロンドンタクシーで向かう僕ら

(캠든까지 런던 택시로 향하는 우리들)

 

다음날에 귀국하는 하드 스케쥴의 시무라군을 위해 그날밤 호텔 앞에 있던 스페인 요리점에서 조촐한 뒷풀이를 했다. 그도 앨범이 완성되어 겨우 한숨 놓은 듯 했다. 

'런던, 나쁘지 않네요. 언젠가 다시 느긋이 놀러오고 싶어요.'라고, 실로 좋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レストランにて完成を祝う

(레스토랑에서 완성을 축하하며)


기분 좋게 취한 나는 모처럼이라며 그를 데리고 런던 거리로 나이트 클러빙을 나가기로 했다. 

마침 그날밤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의 촬영에도 이용된 오래된 클럽에서 매우 좋아하는 Keb Darge라는 레어펑크를 마구 걸어대는 DJ가 이벤트를 연다고 들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해방감에선지, 좀 너무 마셔버린 듯 아쉽게도 기억이 흐릿하다. 

기억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로 너무 마셔서 기분이 나빠져, '속이 안 좋아...'라고 하는 시무라를 데리고 클럽 밖으로 나와 눈 앞에 있던 스타벅스의 화장실에서 토하게 했더니 '기분 상쾌해요!'라고 말하며 돌아왔던 일. 그리고 또 마찬가지로 너무 마신 이마무라군이 갑자기 택시 창문을 연다 싶더니 아무말도 않고 스페인요리를 전부 토해내버려서, 그걸 본 시무라군이 심술맞은 얼굴로 대폭소했던 일 정도이다.

 

늦은 밤 호텔에 돌아와 나는 시무라군이 아직 속이 안 좋은지 걱정되어 그의 방에 찾아갔다.

노크를 해도 답이 없다. 문의 자물쇠는 걸려 있지 않았다.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니 그는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머리 뒤로 손을 깍지끼고, 애용하는 헤드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있는 걸 눈치챈 시무라군은 '마스터링, 좋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늘 작업을 끝내고 애비로드에서 갓 받아온 샘플반을 서둘러 들어보고 있던 것이었다.

'잘됐어, 해냈잖아!' 나는 그렇게 말을 건네고 방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하여 앨범 <후지패브릭>은 완성되었다.

마스터링된 사운드를 듣고 도쿄에서 기다리고 있던 네명의 멤버도 OK 해줬다. 


EMI에는 70년대에 하코네에서 핑크 플로이드를 본 것이 자랑인 코바소우씨라는, 록을 좋아하는 높은 분이 있는데, 그에게서도 '처음에는 예산이 들기도 하고 의구심이 있었지만, 역시 마스터링이 전혀 다르구만, 훌륭했어!' 라고 말을 건네주셔서 안심했다.

 

완성된 아트웍도 최고였다.

레코딩 중에 몇번이나 스튜디오에 찾아와서 시무라군과 회의를 했던, 그들을 예전부터 아는 디자이너 시바미야 나츠키씨는 이 앨범의 세계관을 실로 잘 표현한 보편적인 자켓을 멋지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앨범 <후지패브릭>은 지금 다시 들어도 6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느끼게 하지 않는, 

그리고 1곡도 버릴 곡이 없는 명반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음악은, 설령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낡지 않는 것이다.

분명 앞으로 몇십년이 흘러도 반짝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