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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패브릭 8

Katayose Akito

2010年7月17日

08:47


그리고 2009년의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가 결혼기념일이기도 한 우리들은 외식을 하고 기분좋게 집에 돌아온 직후에 그 비보를 들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일을 취소한 우리 부부는 후지요시다까지 달려갔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시무라군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영원히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그 이후로의 기억은 너무 큰 슬픔 탓에 단편적이다.

후지요시다에서 세명의 멤버들과 재회하고, 울면서 마주 안았다.

모두가 눈물에 잠겨 있었다.

시무라군은 아팠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조사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들었다.

 

평온한 얼굴로 잠든 시무라군을 봐도,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 몸에 더이상 시무라군의 영혼이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나는 제대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굵은 눈물이, 닦아도 닦아도 넘쳐흘렀다.

 

시무라군의 가족은 정말로 훌륭한 분들이었다.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면 나같은 사람은 좀더 의연하게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떻게해도 혼란스러운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속, 속속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례식장에는 멤버가 고른 시무라군이 좋아하는 후지의 곡이 흘러나왔다.

내가 그들과 함께 만든 <꽃>이나 <적황색 금목서>등도 흘러나와, 그때마다 가슴이 욱씬거렸다.

 

그날 밤, 갈곳없는 마음을 안은 우리들은 EMI의 디렉터 이마무라군, 그리고 후지패브릭의 PV의 대부분을 촬영한 스미스씨를 포함해 몇명이서 후지요시다역의 주변에 그저 모여있었다.

모두 그저께부터 잠을 못 잤고 제대로된 식사도 하지 못했기에, 일단 무언가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무작정 찾았다.

 

역 앞의 이자카야를 이마무라군이 발견하고 '여기로 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노렌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안의 다다미방에 자리를 잡았다.

술이 들어가고 간신히 조금이나마 기분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우리들은 두서없이 서로 

시무라군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슬픔을 나누었다.

 

그때, 낯선 남성이 '시무라와 관계있는 분들이십니까?'라고 우리 쪽에 말을 걸어왔다.

아마 나와 동년배정도의 남성이었다. 그도 상당히 취해 있는 듯 했다.

 

'내 남동생이 옛날에 마사히코랑 같이 밴드를 해서요. 그녀석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것저것 음악을 가르쳐줬었거든요.'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사히코한테 그렇게 음악을 너무 많이 들으면 죽는다고 몇번이나 얘기했었는데'라고 깜짝 놀랄 말을 했다.

 

'그녀석 내가 가르쳐준 브라질 음악에 빠져버려서요. 게다가 보통 보사노바가 아니고 그녀석이 좋아했던 건 에두 로보같은 이상한 음악. 너 이렇게 좋냐고 물어봤더니 네!하고 대답했어요. 이상한 녀석이었지'

 

나는 앗! 하고 마음 속으로 고함을 쳤다. 이 사람은 시무라군이 처음 집에 왔을 때 내 레코드 장을 보면서 카타요세씨랑 만나게 하고 싶다고 말했던 고향의 은인임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시무라군의 혼은 아직 가까운 곳에 있어, 우리들을 이곳에 이끌어 이 가게로 닿게 한 것 같았다.

 

나는 후지패브릭의 첫번째 앨범을 프로듀스했던 것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아, 당신이었군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게 말이죠, 마사히코랑도 이야기했었는데요. 보통 J-POP같은 거, 일단 드럼 소리가 작아서 틀렸잖아요? 후지패브릭도 메이저에 가면 분명히 그런 소리가 되어버리는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앨범을 들었더니 제 귀에도 멋있게 들리는 사운드여서 놀랐어요. 그 녀석한테도 잘됐네! 라고 말해줬다구요'

 

그는 부업으로 후지요시다에 브라질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고 레코드의 딜러를 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야말로 2000년대에 마르코스 발레의 프로듀서를 맡은, 유명한 레코드 콜렉터이기도 한 조 데이비스와 직접 거래를 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매니아였다. 시무라군이 무척 마니악한 브라질 음악에도 정통했던 비밀을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마르코스 발레의 재발매도 추진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그와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시무라군의 정신이 곁에 있음을 알았다.

나는 조금이지만 기분이 편해질 수 있었고, 그날밤은 호텔에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후지요시다의 하늘은 흐리고, 후지산은 잿빛 구름에 덮여 그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시무라군이 '카타요세씨, 요시다 우동 알고 있어요? 엄청 맛있어요!'

나, 지금 당장이라도 그것만 먹으러 후지요시다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에요'라고 자주 이야기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들은 고별식 장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요시다우동을 발견하고 그 가게를 방문했다.

아직 오전이었던 것도 있어서 가게 안에는 우리들밖에 없었다.

나는 요시다우동과 병콜라를 주문했다.

나는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우동에 손을 모으고, 시무라군과 함께 먹는 듯한 기분으로 우동을 먹었다. 그것은 아주,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모인, 그를 사랑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관할 때가 되었다.

그때까지 흐려있던 하늘이 어느샌가 개어, 햇빛이 비쳐들고, 구름에 덮여있던 아름다운 후지산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분명 모든 이들이 시무라군의 존재를 느꼈음이 틀림없다.

 

계속

 

吉田うどんにて
요시다우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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