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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패브릭 10
Katayose Akito
2010年8月3日
12:35
후지Q 이벤트 전날, 거의 모든 출연 뮤지션이 리허설을 위해 일찌감치 현지에 도착했다. 내가 이 공연장에 오는 것은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아마 98년, Great3로서 오쿠다 타미오씨랑 블랑키 젯 시티와의 공연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그 때 라이브를 당시 아직 10대였던 시무라군이 보러 왔었는지, 나는 한번도 그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것이 생각났다.
아직 객석에 아무도 없는 공연장은 일단 커서, 그 넓이를 까맣게 잊고 있던 나는 압도되었다. 내일은 1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마음을 품고 여기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바짝 긴장되는 듯 했다.
리허설 후에 숙박 호텔에서 개최된 식사모임에서는 시무라가 사랑했던,
그리고 시무라군을 사랑하는 뮤지션이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전원이 얼굴을 아는 사이일리는 없고, 처음에는 각자 싱겁게 앉아있었으나, 술이 들어감에 따라 점점 서로 서먹함을 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리허설이 길어지며 도착이 늦었던 후지 세사람이 모임에 합류했을 쯤에는 회장의 분위기가 무척 따듯하고 화목한 무드에 둘러싸여있었다. 화제의 중심은 물론 시무라군과의 추억이야기였다.
내가 있었던 테이블에는 요시이씨, 후지야씨, 타미오씨, 와다군, 쿠라모치군, 쿠보군, 코우세이씨 등이 어느샌가 모여있었던 것 같다.
동행하여 회장의 한켠에 있던 쇼콜라에게 진심브라더스의 사쿠라이씨가 '이만큼 얼굴에 보컬이라 쓰여있는 녀석들만 잔뜩 모여있으니 장관이라 웃음이 나오네'고 말했다고 하는데, 실로 그 말대로의 광경이었다.
술이 점점 들어감에 따라, 어째선지 화제가 점점 야한 얘기가 되어버린 것도 재미있었다.
타미오씨가 '이런 인물들이 모여서 왜 야한 얘기나 하고 있는거야. 분명 시무라 탓이다!'라고 말해 다들 웃었다. 확실히 시무라군은 연애에 소질이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일단은 야한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던 녀석이었다. 나도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둘이서 쓸데없는 이야기나 망상을 서로 얘기하고는 폭소했었지, 하고 그리워졌다.
물론 야한 얘기만 화제였던 것은 아니고, 모두가 시무라군이 쓴 곡의 훌륭함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의 곡을 노래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과 긴장도 동시에 이야기했다. 아마도 내일 전원이 가능한한 힘을 짜내어 후지패브릭의 곡을 그를 대신해 부를 각오로 있었을 것이다.
식사모임을 1차에서 끝낸 나는 호텔 방에 틀어박혀 기타를 껴안고 몇번이나 내가 담당한 곡을 연습했다. 심야가 되어 마실 것을 사러 호텔 복도로 나왔더니 어딘가의 방에서 누군가가 마찬가지로 연습하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나는 커텐을 젖혔다. 정면에는 우뚝 솟은 아름다운 후지산이 보였다.
연말에 방문했을 때에는 하얀 눈으로 아름답게 단장했던 후지산이었으나, 이번에는 확 변하여 녹음으로 덮여있었다. 걱정했던 비는 아무래도 전혀 내릴 것 같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이 속속 공연장에 모여드는 모습이 창문으로 보였다.
우리들은 점심으로 요시다우동을 먹고나서, 공연장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시무라군이 여러해에 걸쳐 마음을 쏟았던 후지후지후지Q가 시작했다.
내용은 분명 이곳저곳에서 멋진 레포트가 발표되었을테니 내가 말할 것까지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불가사의할 정도로 근사한 이벤트였다.
이만큼이나 개성적인 멤버가 모여있는데도, 누구 하나 자신의 에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딱히 아무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전원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절절히 느껴졌다.
모두가 리허설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백으로 임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각자의 재능과 굉장한 저력에 나는 감동했다.
출연자 전원이 각각의 퍼포먼스를 무대 윙이나 아티스트 룸의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며 순서가 끝나 무대 뒤로 돌아올 때마다 다들 커다란 박수로 맞아주었다.
별로 국내 음악을 알지 못했던 내게 '카타요세씨, 이거 멋있으니까 들어보세요'라며 자주 시무라군이 가르쳐줬던 아티스트들이 차례차례 스테이지에 올라가, 그의 곡을 노래했다.
시무라군의 기쁜듯한 웃음이 몇번이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관객분들 중에는 출연자 각각이 자신이 가진 특색을 펼치며 노래를 부름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에 시무라군의 존재를 느낀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요시이씨가 '시무라군의 곡은 역시 어딘가 그 스타일의 창법으로 노래하지 않으면 익숙하게 부를 수가 없어' 라고 이야기했었는데, 확실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날은 그뿐만이 아니라, 내게는 노래를 부른 전원에 시무라군이 겹쳐 보였다.
그건 마치 모두가 영적인 매개체가 되어, 그를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한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일곱빛깔로 빛나는 구름이, 아름다운 노을이, 새하얀 초승달이, 그리고 후지산이 마치 기적같은 타이밍에 연주를 다채롭게 했다.
그리고 후지패브릭의 연주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이 특별한 무대에 어울리는 훌륭한 것이었다.
내 차례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담당하는 곡은 멤버의 요청으로 <꽃>과 <사보텐레코드>가 되었다.
이 날을 위해 나는 <꽃>에서 시무라군이 쳤던 어쿠스틱 기타 Gibson J-50과, 내가 레코딩 때 불었던 하모니카를 지참했다.
Puffy의 연주를 스테이지 윙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시무라군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이짱에게 이름을 불려 스테이지로 나가 멤버 전원과 눈빛으로 끄덕였다.
16000명으로 가득찬 객석이 아름다운 노을로 붉게 물들고, 정면에는 장엄한 후지산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꽃>에서는 치밀어오르는 마음에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숨길 수 없었으나,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단지 시무라군을 향한 마음과 기원을 담아 노래를 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사보텐레코드>는 만약 레코딩을 지금 했다면 분명 이런 풍으로 완성되었으리라 생각되는 편곡이었다.
후지패브릭의 마구 출렁이는 굉장한 연주에, 어느샌가 나는 나를 잊을정도로 흥분하여 고양된 텐션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기억나는 것은 예정했던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움직여 버린 탓에, 아마 기타 실드가 벗겨진 것,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마이크를 향해 크게 소리치고 있었던 것 뿐이다.
노래를 끝낸 나는 행복한 감정과 안타까운 감정으로 마음이 갈라지는 것 같아, 우는 듯 웃는 듯한 상태로 스테이지 옆으로 돌아왔다.
갈곳없는 흥분으로 몸이 떨리고 있었으나 출연자 모두가 '잘했어!'라고 말을 걸어줘서
간신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매니저 오오모리씨가 달려와 '카타요세씨, 감사합니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후지패브릭의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인 여성이다.
시무라군은 집에 놀러올 때마다 '오오모리씨, 진짜 나한테 이거저거 시끄럽다니까요~'라고 자주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그런 말과는 달리 시무라군이 얼마나 그녀를 신뢰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전해져와 미소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오모리상이 이 후지Q를 위해 바쳤을 마음의 깊이는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 이벤트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야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나도 깊이 머릴 숙이고 아티스트 룸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참고있던 와인을 병째로 쥐고 3분의 1정도를 단숨에 마신 뒤
뒤이은 요시이 카즈야씨, 쿠루리의 멋진 연주를 보러 스테이지 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앵콜.
시무라군이 없는 세명으로서의 후지패브릭이 마음을 담은 연주로 신곡 '만나러'를 선보였다. 보컬을 담당한 것은 소우군이었다.
아직 <MUSIC>을 듣지 못했던 나는 처음 듣는 시무라군의 멜로디와 그들의 진지한 연주에 빨려들어갔다.
나는 알고 있다. 정말로 정말로, 이 셋은 솔직하고 상냥하고, 순수하고,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이다. 그들을 덮친 슬픈 시련, 그리고 그것에 용감히 맞서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지막으로 모두를 책임지는 듯 스테이지로 올라간 것은 시무라군이 가장 사랑했던 뮤지션이기도 한 오쿠다 타미오씨였다.
윙에서 Puffy 두사람에게서 '고문님! 울지마요!'라는 말을 듣고 '하지마~'라며 너스레를 부리던 타미오씨였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여 부르는 명곡 <茜色の夕日>을 듣고, 스테이지 윙에서는 로디를 시작으로 스탭과 출연자 중 많은 이들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연주가 끝났다.
시작했더니 너무나도 진해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4시간이었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놀이를 보러 출연자 전원이 대기실로부터 달려나와 어린아이처럼 함성을 올렸다.
모두 웃는 얼굴로, 이벤트의 성공을 서로 칭찬했다.
분명 출연자나 스탭도, 그리고 모였던 16000명의 관객들도 어떤 마음으로 이 날을 맞이하면 좋을지,
정말로 어떨지는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모두의 마음 어딘가에 복잡한 감정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을 이렇게 웃는 얼굴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에, 그리고 이렇게도 멋진 이벤트가 된 것에
나는 정말로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카타요세씨!' 말을 걸기에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시무라군의 가족분들이 모두 서 있었다. 시무라군과 많이 닮은 귀여운 자매가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도 웃음지어 주었다.
가슴에 담았던 감사의 마음을 전해받은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버님이 '언젠가 느긋하게 집에 놀러오세요'라고 말해주었다.
꼭 언젠가 고향집을 방문하여, 내가 알지 못하는 시무라군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의 곁에 꽃을 바치고 싶다.
시무라군, 너의 부재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채인 것 같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들이 너와의 슬픈 이별로부터 배워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돌연 네가 사라져, 나는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건 1초마다 우리들이 확실하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흔들림없는 사실이다.
40년 이상이나 살아온 주제에 나는 그것을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의 불안을 겁내어 고민하는 일로 소중히 여겨야하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쓸모없이 낭비하는 매일.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걸어온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공포로 아연했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진짜 의미에서의 '삶'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인생, '죽고싶다'고 생각한 것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얄팍한 레벨로 사고 전체가 정지해 있었던 것 같다.
생사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 순간, 인간은 붙들려있던 고민이나 불안의 보잘것없음을 알고,
그런 것들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상처입히고 있었다는 사실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온갖 사물에의 집착을 놓고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생각되고 있는 지를 신경 쓰는 일도 없이, 문자 그대로 '지금을 살아간다'는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확실히 29년이라고 하는 세월은 잔혹할 정도로 너무나 짧다.
그러나 너는 사랑하는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쳐서, 과거의 향수에 미련을 두면서, 그리고 미래에의 불안에 맞서면서 그것에 삼켜지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창작으로 바꾸어나감으로써 지금을 전부 불태우듯이, 진하게, 두텁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네 머릿속은 만들어야하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어폐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나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 그런 네 삶의 방식을 부러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와의 이별을 겪고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설마 스스로가 어딘가의 진부한 가사처럼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죽음'이 어느날 갑자기 우리들의 목덜미를 나꿔채는 것을 통감하며 그와 동시에 지금, 현재, 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일상은 무엇하나 바뀌지 않고, 고민이나 불안도 속속 모양을 바꾸어 마음 속에 둥지를 튼다.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나도 깨달음은 없이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는 나날을 보내겠지.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앞으로의 인생, 나는 '죽음을 벗삼아' 살아가려고 생각한다.
늘 그것을 스스로의 등 뒤에 느낌으로써 오히려 허무주의적으로 되지 않고 현장의 모든 것이 실로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고뇌라도 가능한 밝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싶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고, 모든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
혹시 우리들은 그 사실을 배우고,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시무라군, 어째서 나는 이렇게도 긴 글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걸까.
답같은 건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그저 이끌리듯 여기까지 써버린 기분이 든다.
나는 네가, 그리고 네가 만드는 음악이 정말 좋았다.
멋대로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더이상 널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로 쓸쓸하다.
앨범 <후지패브릭>을 레코딩했던 2004년부터 빠르게도 6년이 지났다.
음악업계의 불황도 맞물려 현장의 제작비는 줄어들기만해서, 이제는 신인이 그때의 레코딩처럼 상업용의 큰 스튜디오에서 며칠이나 밤을 새우며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같은 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여기에 썼던 추억도, 언젠가는 좋았던 옛시절의 기억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후지패브릭과의 레코딩이 계기가 되어 나는 프로듀서라는 또 하나의 커리어가 열렸다. 그때와 비교하면 경험도 쌓여서 지금은 실무적 고민은 적지만, 특히 신인 밴드나 뮤지션에 관여할 때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이나 압박을 느껴버린다. 개성을 죽이지 않고 음악적으로 기틀이 될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성과를 내고, 이 다음으로 연결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등에 짊어질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쌓은 뮤지션과의 레코딩은 물론 공부가 되고, 멋지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초기충동으로 충만한 젊은 뮤지션과의 일에는 그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것은 정말로 자극적이라 오히려 내가 여러가지를 배우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가끔, 음악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버릴 것 같을 때는, 자주 마음속으로 시무라군에게 이야기를 걸게 된다.
너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며 자극적인 곡을 만들어내던 나날을 떠올리고 '다시 내게 힘을 빌려주지 않을래' 하고 바란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디어가 춤추듯 내려오기도 한다.
아무리 예산이 빠듯하고 타이트한 레코딩이라도 스스로 좋아할 수 없는 '싸구려음악'만은 만들고 싶지 않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각오를 다지고 그 때와 같은 열의로 계속 임하려고 한다.
이 6년으로 후지패브릭은 훌륭한 밴드로 성장했다.
그 모습을 후지Q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나는 정말로, 정말로 기쁘게 생각했다.
그 세명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활동을 계속해갈지, 아직 나는 자세한 것은 아무것도 듣지 않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그들에게 굉장한 가능성이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후지Q에서의, 여러 보컬리스트에 맞춰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그 연주를 미묘하게 다루면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그대로 밀어붙여오는 그들의 연주능력을 보고 나는 몹시 놀랐다.
그것은 분명 시무라군처럼 음악적으로 폭넓은 취향을 가진 천재의 요청에 긴 세월 계속 답해온 성과임에 틀림없다.
혹시 지금, 내가 솔로 앨범을 만든다면 틀림없이 후지패브릭과의 협연을 바랄 것이다. Bob Dylan과 활동한 The Band나, James Taylor에 있어서의 The Section, 일본에서 70년대에 활약한 틴 팬 알리처럼,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앨범도 발매하면서 여러 뮤지션과의 세션에서도 훌륭한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시무라군, 너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고 네가 남긴 음악속에, 언제까지나 계속 살아갈 것이다. 넌 언제나 자신감이 없어서 기운 없어했지만, 지금 몇십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마음이 널 계속 생각하는 것을 알고 얼마나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음악이 사랑받고 있었는지 마침내 알게 되어 겨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안심하지는 않았을까.
후지Q가 끝나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슬슬 나도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할 것 같다. 너와 만나, 너와 함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 나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언젠가 또 너를 만날 날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한번 더 힘내볼게.
우리들은 음악이 없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끼리였다.
지금도 네가, 이 방의, 이 소파에 기대앉아, 집중해서 스테레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모습이 보인다. 너를 잊는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겨우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자, <MUSIC>을 들어보자.
카타요세 아키토
フジファブリック「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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