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Z

9박 10일 유럽 여행 5

서울소녀회 2016. 3. 24. 00:08

 

진작 미리미리 여행기를 써놨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기억을 되짚느라 힘이 든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마음이 아프다. 런던에 있지만 런던이 그립다.. 오늘은 굵직하게는 테이트모던과 브릭레인에 간다. 개관시간인 9시에 맞춰 가기 위해 일찍 기상. 테이트에는 혼자서 간다. 당봉과는 점심에 만나기로 했다. 또 청바지를 입으면 냄새날 것 같아서 이번 여행 직전에 산 황토색 기지 바지를 꺼냈다. 당봉이 정색을 하며 정말 그거 입고 갈 거냐고 물어봤다. 황토색 바지에 갈색 무늬 와이셔츠, 검은 가디건. 문제는 카키색 야상과 갈색 가죽 가방이었다. 나는 깔맞춤이며 톤온톤이라고 주장하며 풀창작을 강행했다. 그리고 거울을 봤더니....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도저히 입고 나갈 수가 없다. 어느모로 봐도 동양에서 온 작은갈색인간이다. 아무래도 여행목표 중 하나인 겨울코트사기를 오늘 브릭레인에서 반드시 완수해야 할 것 같다. (황토바지에 어울릴 것!) 아니면 청바지를 세탁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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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1일 1코네토를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상점에 들러서 처음으로 민트를 먹어봤다. 딸기, 바닐라, 민트 중에 민트가 제일 맛있었다. 그러나 민트는 이 한번밖에 먹지 못했다. 아쉽다.. 한국에 수입해주세요 제발

 

  

 

테이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찬바람이 불든말든 코네토를 먹었다. 사진에도 보이지만 해가 쨍쨍했기 때문에 2월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치고는 춥지 않았다. 런던은 버스가 정말 잘 되어 있어서 주요거점을 잇는 버스는 환승없이 한번에 가는 게 많았다.

 

 

 

넘나 하늘이 맑고 투명한 것.. 어제 선글라스가 없어서 성가셨으므로 이 날은 제대로 챙겨나왔다.

 

 

이 버스를 탈 때는 몰랐지만 건너고 있는 다리는 블랙프리아스 브릿지이다. 날씨가 좋으니 기분이 한껏 들떴다. 자전거만 있으면 충분히 달릴만한 거리같다. 버스에서 내려 꼬불꼬불 계단과 무슨 센터들을 지나 도착. 듣던대로 박력있는 건물이었다. 오른쪽에는 건물이 증축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몰라서 발길 닿는대로 들어갔더니 지하1층이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팜플렛을 무인가판대에서 1파운드에 팔고 있었다. 코인로커는 1파운드 동전 반환식. 가방을 넣고 팜플렛을 들여다보니 (다시는 영국박물관에서처럼 헤매지 않으리..) 2층~4층이 전시공간이었다. 아침식사가 코네토였기 때문에 어제 펍 가는 길?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테스코에서 산 (기억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샀으니 주머니에 있었겠지 그리고 그곳이 테스코일 확률이 가장 높음;;; 근데 왜 영수증이 없을까 당봉이 계산할 때 같이 껴넣었나 뭐 그랬겠지) 비장의 무기 초코렛을 꺼내서 한 입 딱 물었다. 흠... 초콜렛이 아니라 양갱이었다. 원래도 양갱을 안 좋아하지만 한국 양갱과는 또 다르게 단맛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담뱃재를 씹는 느낌이 났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포장지를 다시 확인하니 상호명 Natural 밑에 작게 Liquorice 라고 쓰여있었다. 그래 이게 양갱을 뜻하는 말인가 보네..............^^

 

 

솔직히 누가 봐도 초콜릿 아닌가. 아님 브라우니겠지... 

혹시 몰라서 리쿼라이스 뜻 검색해보니 이런 미친 감초 사탕이라고 한다. 감초맛 하나도 안 났거든?? 담뱃재 맛 양갱이거든? 

 

미련없이 양갱을 버리고 경사진 곳을 슬슬 따라 넓은 곳으로 나아가니 터바인 홀의 거대한 설치작품이 시야를 압도했다. 약간 멍청한 기분이 돼서 이것이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인가... 구조조차 파악이 힘든 어마어마한.. 엄청난 색깔..

 

 

작품명은 <I Don’t Know . The Weave of Textile Language> 흠.... 그래 아무도 모르는거군.. 작가는 Richard Tuttle.

작품 의미는 대략 여기서 확인 가능한데 작가의 베트남 전쟁의 기억에서 시작된 '인간과 기계의 단절'을 나타내고 둘 사이의 건강한 유니언을 찾고자 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근데 결국 수많은 관객이 각자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 의미가 있다는 말하는 걸 보니 백그라운드 지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암튼 엄청난 공간의 엄청난 규모는 잘 전해졌다. 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커서.. 한 층 위에서 보니 그제서야 어떤 구조인지 좀 알 것 같았다.

 

 

테이트 모던의 상설전시는 연대별 또는 사조별로 작품을 나누지 않고 큐레이터들이 주제를 선정하여 그에 어울리는 작품들끼리 모아놓는다. 2층의 상설전시 주제는 Poetry and Dream.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 작품이 아주 많았지만 몇개 기억나는 것만.. 

 

 

 

주제에 맞춰 작품을 모아놓으니 페인팅에서부터 조각, 미디어아트까지 온갖 형태의 작품이 모여있었다. 메시지성이 간결해서 이해하기 좋았던 차오 페이의 <whose utopia?>. '중국 주장 삼각주에 위치한 다국적 기업 오스람 공장의 초대를 받아 진행된 프로젝트로 공장노동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퍼포먼스를 하는 등 노동자들의 창조적 잠재력을 일깨워준 사회참여적 프로젝트' 라고 한다. 여행 갔다 와서야 여행지에 대해 공부를 한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로다..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지는 못했다.

아참, 테이트에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말도 있고 안 된다는 말도 있어서 쫄아서 스탭한테 물어봤는데 굉장히 쾌활하게 찍어도 된다고 했다. 2015년 2월 현재 찍어도 됩니다. 

 

 

 

러시아 혁명 포스터

예산과 기술적 한계 때문에 빨강 검정밖에 안 썼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넘나 멋있는 양식미를 구축했다

러시아어는 타이포도 멋짐.. 한시대를 풍미한 덧없는 꿈이다.

 

 

 

요셉 보이스의 방. 여러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으.. 나름 공부 열심히 해 갔었는데 이제 와서 쓰려니 정말 1도 생각이 안 난다. 다만 요셉 보이스는 그 자신이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말했듯 아무것도 아닌 개념까지도 미술로 만든 사람이다. 그런 개념을 구현화한 것이 내 눈앞에 있는 작품이라면, 그것을 전시하고 감상하러 오는 건 예술 경험의 공유라기보단 아카이브된 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 그리고 저기 놓인 저 오브제들은 반드시 저기 있어야 했던 게 아니라, 우연히 작가가 채용한 제품이고 다른 무엇으로든 대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특정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며 (그야 물론 작가는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단순히 상징물을 의도에 맞게 처리하는 것을 현대미술이라고 하지는 않으므로) 우연을 거쳐 이 전시관에 자리잡게 된 개념의 단면들이 예술사의 기록 외에 또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 공부하고 싶진 않다 난 그냥 미알못으로 살테야..

 

위의 네 작품은 유튜브에 누가 촬영해서 올린 게 있길래 퍼놓아봅니다

 

 

 

 

암튼 문제는 아마도 내가 요셉 보이스에게서 컨텍스트를 읽어내지 못하는 미알못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플럭서스의 후배들이 만드는 미디어아트는 얼마나 친절해졌는지, 미알못도 대충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빌 비올라 작품을 옛날에 한두갠가 유튜브로 봤었는데 그땐 그러려니 했었다. 비디오아트 조상님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요즘 감수성과는 좀 다를거고, 주제의식보다는 그 당시 신기술을 이용하는데 더 의미를 뒀다고 내 멋대로 판단했는데... 미알못의 편견이었습니다. 거장은 괜히 거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체험하기 위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이걸 유튜브로 보면 이 느낌이 전해질 리가 없다. 어두운 방 안에 들어서면 3면 중 한 곳에서 흑백으로 찍힌 사람의 모습이 점점 희끄무레하게 밝아지다가 갑자기 피치를 올려 완전히 화이트아웃된다. 화이트아웃이 몇번 번쩍이는 동안 놀랐던 마음도 안정이 된다. 화이트아웃되는 속도가 너무 절묘하다. 작품을 보고 나와 제목을 봤을때 무릎을 탁 쳤다. <Tiny Deaths>.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어느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을지 상상해봤다.

 

 

 

베이컨, 피카소, 호안 미로. (미로 옆에 에른스트)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을 보니 신기하다.

그리고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찐한 색을 좋아하는 취향이 눈에 보임..ㅋㅋ 

피카소 갤러리에도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에 영국에 간다면 내셔널 외 더이상의 갤러리는 naver... 

지금 테이트 정보 찾아보니 주기적으로 작품들을 바꾸고, 큐레이션도 새로 한다고 한다. 어쩐지 여행 전에 찾아봤던 블로그에 걸려있던 작품들은 없고 그러더라. 역시 6개월 정도 런던에 살고 싶다. ㅠㅠ

 

 

 

 

 

 

전시장 밖에는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려 전송하면 기성 작품들과 콜라보해서 영사하는 벽이 있었다. 어린애들이 신나게 단말기를 붙들고 있었다. 이른바 블룸버그 커넥츠.

그리고 난 배가 너무 고팠고 시간은 너무 없었다. 좀더 힘을 내어 빠르게 걸어보기로 한다.

 

 

 

다음 방은 4층의 Energy and Process. 주제에서 벌써 생동감이 느껴진다. 

 

 

작품 설명 패널까지 찍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보인다 흑흑

루치오 폰타나 Spatial Concept ‘Waiting’

2차원을 갈라서 회화인데 3차원으로 만들어버림. 

 

 

이 땅콩 너무 귀엽다!! 

Chen Zhen Cocon du Vide

기억에는 땅콩이 숨을 쉬듯 저 구슬들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돼서 확신이 없다.

확인해보니 역시 그런 움직이는 조각은 아님. 하지만 숨쉬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귀여운 땅콩같은 코쿤이지만 사실 누군가는 알을 깨고 나오듯 이 번데기를 깨야 한다는 의도라고 함.

자신의 문화적 맥락이 창의력에 제한을 걸어버리는 거라고.. 작가는 중국인이며 저 의자나 비즈들도 중국식이라고 함

 

 

 

 

 

 

남녀젠더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다.

위에서부터 

Margaret Harrison <Homeworkers> Geta Brǎtescu   series of embroidered panels

Annette Messager’ <The Pikes>

지금 보니 셋다 20세기 작품임. 가장 마지막 껀 못해도 나 대학 들어간 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박..

홈워커스는 당시 여성노동이 2등 노동으로 평가절하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부업만 장려되었던 걸 비난하는 작품이다

1977년의 영국.. 2015년 한국......

자수가 놓인 패널은 이아손의 신화에서 악녀로 나오는 메디아를 재조명했고

파이크는 언뜻 귀여워보이는 재봉솜인형이 창 끝에 걸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장기이거나 역사적 사건에서 드러난 엽기적인 형상이고 그렇다. 나는 첨엔 가정폭력을 위시해 여자가 남자에게 폭력을 당해온 부위라고 생각하고 대충격을 받음... 근데 그렇게 상상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Subodh Gupta <Everyday>

나는 반짝거리는 게 좋기 때문에 이 작품도 맘에 들었다.

커다란 접시에 한쪽으로 엉겨붙은 인도 식기들은 밥알처럼 보이게 배치했다는데 (미안 미처 몰랐어..)

인도의 부자든 중산층이든 빈민층이든 출신이 귀하든 천하든 다 식기는 갖고 있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은 먹을 게 없어 굶는.. 그런 차별을 드러낸다 함.

 

솔직히 현대미술 어렵고 돈장난인 측면도 있긴 한데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미의식은 아니고 작품마다 비장미이기도 하고 키치적인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무튼 아름다움이 있음. 다만 생리적으로 역한 건 난 못 보겠더라... 자해 좀 하지마..

 

 

백남준 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9점을 구입해 2014년부터 전시중.

백남준에 대해서는 한국의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잘 설명해놓은 팜플렛이 있네요 호호

http://njp.ggcf.kr/wp-content/uploads/sites/5/2013/07/group-reservation_t_print.pdf
테이트의 백남준 페이지에서 전시장 스케치와 큐레이터 인터뷰도 준비해놨다. 퍼오기가 안 돼서 주소만.동영상 보러 가기

 

 

 

 

<Nixon (1965−2002)>위 팜플렛의 설명에 따르면 

‹닉슨 TV›는 구리선에 부분적으로 통하는 전기 자극에 의해 모니터의 영상 이미지 닉슨Richard Nixon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효과를 보여준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존 F. 케네디에게 패배한 리차드 닉슨은 1968년, 대통령 후보로 정계에 복귀하여 미국의 37대(1969 ~ 1974)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워터게이터 사건에 연루되면서 결국 1974년 사임하게 된다. 1965년에 제작된 ‹닉슨 TV›는 백남준이 케네디와 닉슨의 대결에서 케네디가 승리를 거두게 된 데에 당시 미국가정에 보급된 TV 매체가 많은 역할을 했었던 사실에 주목한 것으로 생각된다.

 

라고 한다. 왼편의 닉슨을 오른쪽에서 계속 왜곡시키는 게 재밌었는데 미디어의 영향을 상징하는 것이었구나..! 왜 하필 닉슨인가 했지..! 사실 테이트에 백남준관 있는 것도 몰랐어섴ㅋㅋㅋ 공부가 넘 부족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패기랑 에너지.. 다시 말하면 미지의 기술에 기대하는 정체모를 희망과 두근거림같은 게 느껴짐. 

 

 

<Three Eggs (1975−1982)>

요런 거 너무 귀여움. 어느 게 진짜 달걀일까? 진짜라는 게 뭘까?

 

  

 

 

왼쪽은 <Bakelite Robot (2002)>, 오른쪽은 작품명을 찾을 수 없다; 아이디어 스케치인듯?

라디오로 로봇을 만든 작품인데 이런 식으로 귀엽고 장난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는 게 아까 말한 정체 모를 희망임. 백투더퓨쳐에서 보는 미래같은 거.. 작품 연대를 고려하면 일부러 소년성을 강조한 거 같아서 약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게 되기도 하지만, 난 딱히 그렇게 잘 벼려진 미감같은 거 없으니 할아버지가 소년성 좀 강조했다는 게 뭐 어떠냐 싶냐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볼 곳이 좀 더 남아있지만 이대로는 작품이 머리에 안 들어올 것 같아서 6층으로 올라가 레스토랑으로 갔다. 생각도 못한 뷰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알고보니 이곳은 테이트모던에서 소장작품들만큼 유명한 뷰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침 날씨도 굉장히 좋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테이블 쪽은 식사를 해야 앉을 수 있는 눈치라 그나마 만만한 가격인 피칸파이를 하나 사서 (포크랑 냅킨 땜에 받아들다 말고 또 어버버함. ㅠㅠ 빠릿빠릿하고 싶다..) 창가 자리 하나를 차지했다. 혼자 다니니 이럴때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좋다. 12시였기 때문에 사람이 꽤 복작거렸음. 2.6파운드 치고 작아보였지만 먹으니 의외로 많은 양이었다. 맛은 뭐.. 평범한 호두파이 맛이다. 지금은 살기 위해 먹는거지 맛땜에 먹는 거 아니다. ㅠㅠ

 

 

 

옆에 앉은 언니는 한국인이었고 유학생인 것 같았다. 다른 유학생선배로 추정되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유학생활의 고충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힘내세요.. 세인트폴 성당이 이쁘고 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다. 이것만을 위해서 테이트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뷰다.

 

 

 

 

 

세인트 폴 진짜 이쁘다.

허기도 채웠고 당봉을 만날 시간도 가까워져간다. 기운차게 마지막 상설전시실인 Structure and Clarity 로 향했다. 미니멀리즘 작품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난 미니멀리즘은 잘 모른다.. 인테리어에서 자주 봤다는 정도로만 안다.. 심지어 이럴수가 이 여행기를 쓰는 지금은 structure and clarity 기획이 끝나서 테이트웹의 해당 태그가 전부 빠져있다.. 작품명을 안 찍은 작품은 영원히 정체를 잃어버리게 생겼다..

 

 

 

 

대만 작가 Li Yuan-Chia (이름 읽는 법도 구글링이 안 된다 한국웹의 뎁쓰 참으로 잘 알겠다..)의 설치 작품. 

천천히 원판이 돌아간다. 천천히 매달아놓은 줄을 돌리는 건지, 아니면 공조때문에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리듬이 좋았다. 찾아보니 작은 부품이 박힌 큰 원판을 전시실 한 가운데 가득 채우기도 하고, 테이트에서처럼 세개만 매달아놓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흰색은 순수, 검은색은 만물의 근원, 빨간색은 삶, 더운 피, 금색은 고결을 상징하고 이것들을 모든 것의 시작인 'cosmic point'라고 부르며 추구한다고.. 굉장히 영적이군..

 

 

 

엘스워스 켈리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방.

찍으면서도 이걸 찍을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실제로 보거나 아니면 원화에 가까운 도판을 보는 게 최고.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쾌감을 주기 마련인데 미니멀리즘은 그게 선명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암튼 기념샷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할 당시 많은 작가들은 Li Yuan-Chia 처럼 색에 상징성을 부여했고 선사상같은 것과도 결부되곤 했지만 엘스워스 켈리에게는 색깔은 그저 색깔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색 배열도 의도성은 1도 없이 우연에 근거했다고..

 

헉 검색하다보니 5일전에 엘스워스 켈리가 작고했다고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도널드 저드의 무제 작품. 책장으로 쓰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찍은 사진이 해도해도 너무 안 예쁘게 나와서 

https://www.reiss.com/explore/blog/structure-and-clarity/ 이곳에서 퍼온 사진을 첨부해본다..

미니멀리즘은 직선이 직선답게 보일 때 예쁘잖아요. 

 

   

 

 

 

상설 전시장을 다 보고 나오는데 되게 정서적으로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쌀쌀한 날씨와 맑은 공기 덕에 또렷하게 보이는 건물 풍경이 그 느낌을 부채질했다. 점점 관람객들이 많아졌던 테이트 내부와는 달리 건물 밖은 한산했다. 버스킹 금지라는 팻말이 보였다. 여기도 홍대 9번 출구 앞만큼 고충을 겪는구나 싶다.

 

 

 

 

 

 

 

당봉과 점심을 먹으러 세인트폴 옆에 있는 'One new change'에 입점한 바이런으로 갔다. 런던에는 쉑쉑버거와 바이런이 유명한데, 쉑쉑은 다들 알다시피 사실 미국꺼니까 영국 브랜드를 먹어보고 싶었다. 맛집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당봉보다 먼저 도착해 기웃거리니 점원이 와서 자리로 안내해줬다. 친구가 올때 주문하겠다고 하고 메뉴를 살펴봤다. 피칸을 먹긴 했지만 햄버거를 먹을 생각하니 흥분에 가슴이 떨렸다. 곧 당봉이 주린 배를 붙들고 도착했다. 난 그저 입구 근처에 앉으면 날 찾기 쉽겠거니 했는데 당봉이 앉을 자리에.. 출입구가 열릴때마다 바람이 쉭쉭...미..미안합니다.... 쿠사리를 식전 에피타이저로 조금 먹고나서 바이런 버거 하나, 스모키 버거 하나, 어니언 링 하나, 바닐라 쉐이크, 콜라를 시켰다. 콜라랑 쉐이크가 먼저 날라져왔다. 

 

 

 

콜라병이 귀여워서 가져가고 싶었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그냥 뒀다. (무거움) 한국엔 왜 유리병콜라를 안 팔까. 쉐이크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그리고 햄버거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메뉴를 시킨 것이다!!

 

 

 

너무너무너무 맛있었다.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인 맛이었다. 수제버거 짱이다. 크기도 진짜 겁나 크다. 어니언링도 크고 맛있다!! 쉐이크도 많고 달고 맛있다!!!! 배가 불러 씩씩대면서도 이건 반드시 다 먹어야겠다 싶었다. 피칸파이 어쩔 수 없이 살고자 먹긴 했지만 그게 위장에서 차지하고 있을 부분이 한스러울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 내 평생 살며 먹은 수제버거 중에 제일 맛있었다. 한국에서 여기보다 맛있는 데 알고 계시면 제발 제보 바랍니다 전 그 곳의 단골이 되고 말테여요

 

가격은 29.55파운드. 한사람 15파운드 꼴. 런던 외식 물가 생각하면 뭐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가장 기본인 바이런 버거가 9.5파운드임.

 

 

 

 

팽창한 위를 껴안고 브릭레인으로 가려는 버스를 찾아가는 길에 세인트폴에 들렀다. 마침 재의 수요일 미사를 하고 있어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관광객인 티 내며 사진 찍으면 돈 받을 거 같아서 재의 수요일 안내 주보만 받아 플로어를 찬찬히 구경만 하다 나옴. 평소에 돈 내고 입장하더라도 사진은 절대 찍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연단에는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다. 날씨가 좋으니 천정과 벽면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빛이 쭉 들어와서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천장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있었다. 어떻게 그렸을지 얘기하다가 당봉이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할 때, 성당 바닥이 상한다고 그랬댔나 아니면 그냥 높으신 분 심기를 거슬러서 그랬댔나 높은 사다리를 못 쓰게 하고 천장 밑에 받침대를 달아 누워서 그리게 했기에 작업이 굉장히 고생스러웠다는 얘기였다. 세인트폴의 천장화는 어떻게 그린걸까..

 

 

 

성당에 앉아 잠깐 다리를 쉬게 해줬다가 버스를 타고 브릭 레인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수요일이니 올드스피탈필즈 마켓이 열린다. 홍대 플리마켓처럼 열리는 걸까 싶었지만 지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도가도 벼룩시장스러운 부스가 1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주차장 안에서 열린다는 선데이업마켓도 대체 그 주차장이 어딘가 싶었다. 대신 구제패션샵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프 트레이드를 발견했다! 오오오!! 그치만 막 사들일 돈은 없어! 

 

러프 트레이드 사진을 한장도 안 찍었다. 구경하기 바빠서. ㅠㅠ ...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찍어놨었다! 기쁨!! 다만 사진이 너무 엉망진창으로 찍혀있어서 ㅋㅋㅋㅋ 시커멓게 찍혀서 러프 트레이드인줄도 모르고 넘어갈뻔 ㅋㅋㅋㅋ 포샵으로 애써봤다

 

 

오른쪽에 조그맣게 보이는 거

 

 

짜잔

사진 진짜..ㅋㅋ 어떡하냐 이때 폰카메라 설정이 뭔가 이상했던 듯 

내부사진으로 추정되는 게 하나 있는데 도저히 복원이 안됨

 

사실 내부는 그냥 평범하고 상당히 큰 규모의 레코드숍이었다. 필사적으로 한국에 라이센스 안 된 영국밴드들을 떠올리려고 했으나 기억하고 자시고도 없이 그냥 나는 처음부터 그런 정보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버틴즈 엘피가 대대적으로 전시되어 있어서 약간 고민했는데 요즘 후지패브릭 엘피 사들이는거보면.. 그냥 살걸 그랬지.. 리버틴즈 말고도 여러 유명 가수들의 엘피가 좍 깔려있었다. 안 들어봤던 밴드를 들어보고 싶어서 샘플 청취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되게 많았다) 2014년에 가장 주목받는 인디밴드로 선정된 템플즈를 사기로. 샘플도 매우 훌륭했다. 디럭스 시디인 것도 맘에 들었다. 당봉은 좋아하는 밴드의 신보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사실 내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온 거라 좀 눈치가 보였는데 득템해줘서 나도 넘 기뻤음..(코쓱)

여기 오면 관광 아이템으로 즉석 사진을 찍는 모양이던데 그런거 1도 몰라서 못 찍었다. 부스 있는 줄도 몰랐다.ㅠㅠ

사펙이 엠파이어 어워드 같은데서 즉석 사진 찍던 것도 그렇고 보면 영국인들 문화 중에 하나인듯? 

 

 

 

템플즈 좋아여 많이 들으세요

뮤비는 저도 첨 보는데 되게 얘네 노래같네요

 

러프 트레이드를 나와서는 우리가 한국에서 본 플리마켓 같은 부스는 여기 없다는 걸 인정하고, 눈앞에 보이는 구제샵들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봤다. 나는 코트와 가방이 필요했다. 근데 말이 구제지 가격은 별로 안 구제같더라.. 여행기 보면 작은 소품샵도 많던데 왜인지 우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일욜에 열리는 브릭레인마켓에 그런 게 많은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마침내 올드스피탈필즈 마켓을 발견했다. 각오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아서 금방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에 드는 코트를 발견했다! 거의 직선으로 떨어지는 라인에 카라가 없어서 목도리 매기도 좋다. 단추를 잠가도 풀어도 맘에 든다. 백퍼센트 울에 메이드 인 브리튼이라고 쓰여 있는데 아마 음 뭐 요새 우리나라 인쇼에서 사면 거의 대부분 메이드 인 코리아니까..?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판매하는 사람이 직접 디자인한 옷 같아서 그게 좋았다. (아님 어쩌지) 사이즈는 정말 이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딱 맞았다..ㅋㅋㅋㅋ 그 와중에 총장은 사실 조금만 더 짧았으면 했지만.. 옆에 있는 다른 코트를 걸치려고 할때 판매하는 언니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그건 니가 방금 입어본 옷(=내 맘에 드는 코트)보다 훨씬 큰 사이즈니까 입어보나 마나야 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했다 당봉이..) 왜 그렇게 매우 큰 사이즈 차이가 나는 옷이 나란히 걸려있을까 혹시 이건 아동복 라인이 아닐까... 그치만 그런 생각은 말기로 하자...

 

암튼 옷이 백퍼센트 울이라 그런지 빳빳한 거 빼면 별로 무겁지도 않고 좋았다. 빳빳한 건 입다보면 괜찮아지겠지! 무엇보다 갈색인간이 되는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찜해놨다가 마켓을 한바퀴 돌고나서 아묻따 질렀다. 70파운드였던 것 같다. 당시 환율로 얼마지 12~13만원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싸게 산건 아니지만 일단 나는 이 옷이 마음에 들었고 또 필요하다 지금 당장 ㅋㅋㅋㅋㅋ 이 때를 위해 현금을 아껴놨던 것이다!

 

그 후 브릭레인을 계속 구경하다가 프레드페리 샵을 발견했다. 여긴 분명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맞는 사이즈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프레드페리를 보면 꼭 들어가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시착도 가능했다. 검은색 피케티 구입. 택스리펀도 받았다. 공항에서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한다. 55파운드. 10만원이 안 된다. 넘나 기쁘다..ㅠ0ㅠ

 

나의 호방한 오토나가이를 보던 당봉은 무언가 뜻한 바가 생겼는지 아까 구경하던 빈티지샵 중 하나로 돌아가 점찍어놨던 부츠를 샀다. 사이즈가 아주 애매하게 작아서 고민하던 건데 이쁘기는 정말 예뻤다. 사이즈만 맞았으면 내가 사고 싶었음.. 그리고 바로 신어봤는데 역시 예뻤다. 문제는 다음 목표로 하던 비욘드 레트로까지 의외로 꽤 긴 길을 걸어야 했던 것. 신발은 역시 조금 작았던 것... 날은 점점 저물어가고.. 결국 당봉은 비욘드 레트로 앞에서 신발을 다시 갈아신어야했다. 

 

 

 

비욘드 레트로 가는 길. 막상 비욘드 레트로 사진은 없음..

 

비욘드 레트로는 규모가 굉장히 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찾는 가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엄청난 러시아st 모자를 발견해서 써봤는데 아주 잘 어울렸다. 원래 멀쩡한 캡은 전혀 안 어울리고 이런 모자는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내가 일본에 살았으면 샀을테지만 그러나 내 고향은 서울.. 페도라도 메텔모자도 쓸 수 없는 도시..

 

 

 

구글링해서 찾은 비욘드 레트로 전경. 이런 데였나... 너무 서먹하네여..

 

 

브릭레인을 위시한 동런던은 별로 치안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고 또 많이 지쳤기 때문에 해가 지면서 귀가를 결정했다. 브릭레인을 떠나기 전에 베이글 베이크에 들러서 이곳 명물이라는 핫솔트비프 베이글을 테이크아웃. 아직 바이런이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먹지는 못했다. 따끈한 걸 바로 못 먹어서 좀 아쉽지만.. 진짜 배가 아직도 보통 이상으로 불러 있었기에..;;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1.6파운드. 아참, 내껄 주문할 때 미리 돈을 달라길래 줬는데, 베이글을 만들어서 건네주는 아줌마가 다시 돈을 달라고 하길래 당황해서 저기 저 아줌마한테 줬다고 하니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였다. 왜 미리 말 안해줬냐고 두번 받을 뻔 했다고..ㅋㅋㅋㅋ 날카로운 고성 속에 뻘쭘하게 베이글을 받았다. 

 

이때쯤에서야 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으리

 

 

 

 

이런 느낌의 거리입니다. 좋죠. 좋고 치안 나빠보이죠.

그렇지만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뭔가 엄청 웃기고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서 걸어갔던 것 같은.. 마치 청춘의 한자락인 것처럼 왜곡된 이미지가.... 그런 미화된 이미지가 남아 있다. 암튼 빵터졌는데 뭐였지

 

 

 

 

숙소로 돌아와서 베이글이 더 딱딱해지기 전에 얼른 먹어봤다. 맛있다!! 생각보다 별로 안 짰다. 아주 부드럽고 보송보송한 장조림을 먹는 것 같았다. 빵도 고소했다. 이 가격에 이 퀄리티라니~~ 런던 너무 좋다~~~ 그렇지만 역시 아직도 배가 불렀기 때문에 절반정도 먹고 나머지는 내일 먹을 생각으로 킵해뒀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질 못했다. ^^

이 자그마한 세탁소동 덕분에 분노에 찼었기 때문에 열심히 전후상황을 복원해서 적어놓겠다

 

남색 코트를 사긴 했지만, 그래도 황토색 기지바지가 신발과도 생각보다 안 어울리고 핏도 구렸기 때문에 (ㅠㅠ 입어보고 가져올걸) 남은 여행동안도 입을 수 있게 청바지를 세탁하고 싶었다. 어제 돈을 뽑으러 간 당봉을 기다리는 동안 지하1층에 란도리 룸이 있다는 걸 봤다. 세탁물을 들고 내려가보니 코인란도리였고 세제는 카운터에 얘기해서 따로 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마침 앞 사람이 쓰고 남은 고형세제바가 절반정도 버려져있어서 냉큼 주웠다. 고형세제바 반쪽은 바지 하나랑 양말밖에 없으니 충분한 양이었다. 신나게 바지를 넣고 세제로 부셔서 뿌리고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려는데~~ 동전을 뱉어내네?? 몇번을 해봐도 똑같아서 카운터로 가 물어보니 어제 이 시간에 세월없는 체크인을 하던..이름 생각 안 난다.. 안토니오라고 하자 안토니오가 하필 오늘 고오장이 났다고 한다. 고장이 났으면 문 앞에 안내문을 붙이던가요... 1차 빈정이 상함. 근처에 가장 가까운 코인 란도리샵이 어딘지 물어봤다. 막 뭐라고 말을 하는데 대충 이쪽으로 쭉 가다보면 나온다고 한다. 10분정도? 

 

다시 란도리룸으로 돌아가 세제를 털어내고 ㅠㅠ 시간이 7시였나 8시였나, 혼자 나가기는 무서웠기 때문에 당봉에게 얘길 했더니 테스코에서 장도 볼 겸 함께 가 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한번 안토니오에게 방향을 물어봤다. 문제는.. 단순 직선으로 된 길이 아니었다. 10분 거리? 아니었던 것이다... 한참을 가도 비슷한 게 안 보이니 당봉은 애초에 우리가 알아들은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야했다는 설을 주장했다. 그래서 일단 테스코에 가서 식료품을 몇개 사고 왔던 길을 돌아 호스텔을 지나쳐 반대방향으로 갔는데, 가다보니 이 길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짐을 든 당봉을 숙소로 보내고 이제는 오기가 생겨 처음 가려고 했던 방향으로 다시 가봤다. 전속력으로 경보를 했다. 유럽 치안 무섭다구욧 ㅠ0ㅠ 놀랍게도.. 아까 우리가 포기했던 데서 100미터 정도 더 가니 란도리샵이 있었다. 그리고 6시에 영업을 끝낸 상태였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의 분노....................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최대치가 아니었다

 

숙소까지 다시 분노의 경보를 해서 돌아왔는데, 아차 그러고보니 하나밖에 없는 출입열쇠 (용도: 1. 호스텔 출입 2. 룸 복도 출입 3. 방 출입)가 당봉에게 있었다. 카톡으로 울음바다를 만들며 당봉을 부르고 있다가 누가 호스텔로 들어가길래 냉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복도에서 아직 1이 안 사라진 카톡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 안토니오가 이불더미를 들고 룸 복도 출입구를 열었다. 안토니오를 따라가면서 좀 짜증이 나서 거기 문 닫았던데? (예상답안: 헉 진짜? 미안해~ 고생했겠다 오또케) 라고 했더니 이 새끼가 넘나 쿨하게!!!! 'ㅇㅇ 문 닫었어' 라는 말만 남기고 바람같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다!!!!!!!!! 와 얘 봐라??????? 알면 얘기를 해야지????? 내가 들고 나갔고 지금도 껴안고 있는게 빨래가 아니면 뭘로 보였니???? 아~ 봉투가 까매서 잘 몰랐겠구나 내가 굳이 란도리 위치를 몇번이나 묻고 나가는데도 세탁소 이미 닫았다는 얘긴 해줄 필요가 없을 거 같았니? 와 나 참 ^^ 아무리봐도 고읜데 이거 야 니가 한국말 모르고 내가 영어 못하는 거 다행으로 알아라 

아옥 쓰다보니 다시 분노가 치솟는다. 얘야 부디 앞으로 낫지 않는 악성 변비에 걸리렴

 

결국 청바지는 다시 고이 접어... 혹시 몰라 당봉이 빌려준 페브리즈를 몇번 칙칙 뿌리고.. 고스란히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아참, 그렇게 세탁에 실패하고 들어와서 분노의 샤워를 하는 동안 당봉은 우리의 오이스타 카드를 현지 유학중인 사촌동생에게 맡기러 다녀왔다. 반납시 돌려받는 보증금을 미리 동생에게 받고, 내일 아침 빨리빨리 이동하려는 계획. 보증금 5파운드와 기념품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역시 아무래도 5파운드짜리 기념품은 넘 비싸지 싶어서.. 그리고 한푼이 아쉬웠어서.. 지금 생각하면 걍 가져올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근데 뭐 디자인이 대박적인 것도 아니고.. 카드 케이스도 못 받았고... 그런 마음의 갈등이 아직까지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귀엽기도 하고..

 

 

 

2015.12.04 19:16 작성

2016.03.23 00:07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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